봄이라도 된 듯 포근한 날씨에 비가 촉촉이 내리는 1월의 어느 주말. 영장산 자락에 위치한 봉국사를 찾았다.
태평역 사거리를 지나 가천대 옆 도로로 들어서니 꽤 높은 고갯길이 나온다. 한참을 걸어야 할 고개를 자동차로 가뿐히 넘으니 얼마 지나지 않아 도롯가로 큰 사찰 입구가 보인다.
깔끔하게 관리된 주차장에 차를 대고 주지 스님을 뵈었다. 무엇이 그리 급하냐며 내어주시는 맑은 차 한잔의 온기에 얼른 대광명전을 보려 했던 성급함이 차분히 가라앉는다.
대한불교 조계종의 말사인 봉국사는 1028년(고려 현종 19년)에 창건된 천년고찰이다. 1395년(조선 태조 4년) 보수를 거쳐 1674년(현종 15년) 다시 지어졌다. 현종은 어려서 죽은 명혜, 명선 공주의 명복을 빌기 위해 두 공주의 무덤 가까이 있던 이 절을 다시 짓도록 했다. 봉국사는 왕실의 명복과 안녕을 기원했던 사찰로 추정되는데, 대광명전도 이때 함께 지어졌다.
불상 주변의 장식방식 등 조선 후기의 불전 양식을 보여주는 대광명전은 1980년에 경기도 유형문화재로 지정됐고, 지난해 12월 28일, 성남시에 있는 건축문화유산 중 처음으로 국가지정문화재 보물로 승격되며 그 가치를 인정받았다.
물기에 젖은 자갈을 밟으며 발걸음을 옮기니 뽀얗게 피어오른 물안개가 대광명전을 감싸고 있다. 법당 문 앞에 놓인 신발 한 켤레와 그 옆에 우산이 눈에 들어온다.
조용히 들어서니 중앙에 나무로 만든 아미타여래좌상이 있고 그 양옆으로 관음보살과 지장보살이 있다. 불상 옆으로는 1873년(고종 10년)에 그려진 불화가 보인다. 이 아미타불회도와 아미타여래좌상도 경기도 유형문화재로 지정돼 있다.
예불을 드리는 고언심(서현동) 씨에게 여기에 오는 이유를 물었더니, 오랜 외국 생활 후 성남에 정착하면서 자신에게 맞는 절을 몇 달 동안 찾아 헤맨 뒤 찾아낸 ‘보물’ 같은 곳이라는 답이 돌아온다. 아, 누군가의 마음에 이미 여기는 보물이었구나!
경내 뒤로 높이 솟은 아파트가 보인다. 주지 혜일 스님의 말씀처럼 어쩌면 한때는 며칠을 걸어야 겨우 도착할 수 있었던 첩첩산중이었을지도 모르는 이곳에서 우리 선조들이 위안을 얻었고, 지금은 우리가, 그리고 언젠가는 우리의 자손들이 그러할 것이다.
유구한 세월을 감내하는 큰 나무의 뿌리와도 같은 우리의 소중한 문화유산을 자긍심과 애정을 갖고 바라봐 주면 좋겠다는 혜일 스님의 말씀이 오래 찌고 덖어 깊은 맛이 우러난 찻물 위로 조용히 감돌았다.
취재 서동미 기자 ebu73@hanmail.net 저작권자 ⓒ 비전성남,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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