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주변 산책길이나 공원 숲에는 ‘고종이 선물 받은 서양의 나무’, ‘안네 프랑크의 나무’, ‘파리 샹젤리제 거리의 명물로 꼽히는 가로수’ 등으로 알려지며 다양한 이야기를 품고 있는 나무가 있다. 바로 칠엽수(七葉樹)다.
칠엽수과의 넓은 잎 큰키나무인 칠엽수(학명: Aesculus turbinata Blume)는 긴 잎자루 끝에 손바닥을 펼쳐 놓은 것처럼 일곱 개의 커다란 잎이 달린다.
칠엽수 열매의 영어 이름은 ‘말밤(horse chestnut)’이다. 원산지 페르시아에서 말이 숨이 차서 헐떡일 때 칠엽수 열매가 치료약으로 쓰였기 때문에 이 이름이 생겼다는 이야기와 겨울에 보이는 엽흔(葉痕: 가을에 잎이 떨어진 자리에 생긴 흔적)이 말발굽 모양이라 붙인 이름이라는 이야기도 있다.
칠엽수의 또 다른 이름인 ‘마로니에(marronnier)’는 ‘낙원의 들판’이라는 뜻의 프랑스 샹젤리제 거리의 가로수로, 파리의 명물 중 하나다. 엄밀한 의미에서 마로니에는 유럽이 고향인 ‘유럽 칠엽수’를 말한다.
일본 원산의 ‘일본 칠엽수(日本七葉樹)’도 있는데 두 나무는 생김새가 비슷해 구별하기 쉽지 않다. 일본 칠엽수는 가시칠엽수로 불리는 마로니에와 달리 잎 뒷면에 적갈색의 털이 있고 열매껍질에 돌기가 흔적만 남아 있을 뿐 거의 퇴화했다.
마로니에 중 안네의 일기에 언급된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의 마로니에는 ‘안네 프랑크 나무’로 불리며 유명세를 탔다.
2010년 강풍에 쓰러져 고사해 많은 이들이 안타까워 한 가운데 다행히 안네프랑크나무의 열매로 키운 자식들이 미국 뉴욕의 9/11 추모공원과 홀로코스트센터를 비롯한 세계 곳곳에 식재돼 있다.
우리나라에 마로니에가 들어온 것은 20세기 초 네덜란드 공사가 고종에게 선물한 것을 덕수궁 뒤편에 심은 것이 처음이며 아름드리 거목으로 자라 지금도 덕수궁에 남아 있다.
가을이 되면 칠엽수 잎은 노랗게 물 들고 알밤과 비슷한 열매를 떨어뜨린다. 단백질과 전분이 많은 열매는 제법 커 먹음직스럽게 보이지만 독성을 가지고 있어 식재료나 약재로 사용할 땐 각별한 주의가 필요하다.
프랑스에서는 ‘설탕에 절인 밤톨’이라는 뜻의 프랑스 겨울 디저트 ‘마롱글라세(marrons glaces)’로, 일본에서는 돗토리현의 특산품인 칠엽수 열매를 섞어서 찧은 ‘도치모치(栃餅)’라는 화과자의 재료로 이용됐다.
취재 김기숙 기자 tokiwife@naver.com 저작권자 ⓒ 비전성남,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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