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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레어 키건의 소설 『이처럼 사소한 것들 Small Things Like These』

【여수동 책방】

  • 비전성남 | 기사입력 2025/04/19 [18:38] | 본문듣기
  • 남자음성 여자음성

어중간한 색감의 표지는 불운하다. 책 좋아하는 사람이 아니더라도 표지 그림이 황량한 대지를 나는 자유로운 검은 새라면 누구나 묘한 불안이 스멀스멀 올라오기 마련이다.

 

▲ 『이처럼 사소한 것들 Small Things Like These』   © 비전성남

 

그럼에도 불구하고 책을 집어 올리자마자 얇은데? 금방 읽을 수 있겠어!’라는 나이브한 안도감이 스며들었다. 아니다 다를까 이처럼 사소한 것들 Small Things Like These역대 부커상 후보에 오른 가장 짧은 소설이란다. 잘 됐다.

 

아는 만큼 보인다고 아일랜드 역사를 알면 이 책의 정서를 이해하기 훨씬 쉽다.

아일랜드는 영국 서쪽에 위치한 섬나라로, 수도는 더블린이다. 켈트족이 원주민으로 영어를 사용하지만 아일랜드어를 국어로 가진 문화적 민족적 자긍심이 높은 나라다.

 

일제강점기를 가진 우리나라처럼 800년간의 영국 식민지배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지난한 투쟁을 통해 독립한 나라지만 내전으로 북아일랜드는 영연방에 속하고 남쪽 아일랜드는 자유국이 된 반쪽 독립으로 현재에 이르고 있다. 진짜 우리 역사랑 닮은 구석이 많다. 그래서 문학적인 거장도 많고, 음악도 우리 정서에 잘 맞나 싶다.

 

이 책은 18세기부터 20세기 말까지 아일랜드 정부의 지원으로 카톨릭 교회가 타락한 여성들을 수용한다는 명분 아래 불법적인 잔혹행위와 학대, 노동착취로 운영했던 막달레나 세탁소를 배경으로 한다.

 

동네 사람들은 높은 담 안에서 저질러지는 세탁소의 실체를 짐작은 하지만 모른 척한다. 종교적 권위를 가진 수녀원으로 대표되는 세상은 너무 크고, 그 안의 어떤 존재들은 너무 작아 미미하다. 얼핏 보면 보이지 않고, 외면하면 평안히 자기 삶을 살 수 있는 작은 사건이 주인공을 찾아온다. 아무도 나서지 않는 사소한 일 같지만 누군가는 말이나 행동으로 드러내 움직여야 하는 양심 사이에서 고뇌하는 한 남자의 내면을 치밀하지만 담담하게 묘사한 소설이다.

 

실존인물이나 실화를 쓴 것은 아니지만 1996년 아일랜드의 마지막 막달레나 세탁소가 문을 닫은 후 세상에 밝혀진 사실을 바탕으로 구성됐다니 그 안에서 얼마나 많은 여성과 아이들이 감금, 은폐, 강제노역, 폭력 앞에 노출됐을지 참담한 심정이다. 아직도 실상은 온전히 밝혀지지 않아 피해자를 약 1만 명에서 3만 명으로 추정한다고 한다

 

이처럼 사소한 것들 Small Things Like These은 작년에 킬리언 머피가 주연과 제작을 맡은 동명의 영화로도 발표됐으니 소설과 같이 비교하면서 보는 즐거움도 만끽하시길 바란다.

 

우리가 살면서 양심에 따라 하고 있는 이처럼 사소한 것들때문에 세상은 아직 살 만한 곳일 지도 모른다. 사소하고 미미한 것들이 이 세계를 지탱하고 굴러가게 하는 원동력이듯….

 

 

양시원 기자 seew2001@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