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감은 자신의 품위를 상징하고 재산과 권익을 보호하는 징표로 사용하는 것입니다.” 김대중 전 대통령을 비롯해 김용철·김덕주·윤관·최종영·이용훈 대법원장과 오성수 전 성남시장·이대엽 성남시장 등 법조계, 학계, 문화계 인사들의 ‘도장’을 도맡아 제작하고 있는 평천(坪泉) 이대교(李大敎·69) 화백. 이 화백은 서(書), 화(畵)는 물론 전각(篆刻·돌이나 나무, 동물의 뼈 등에 글과 그림을 새김)의 달인으로 서·화·각 분야의 장인이다. 성남동 자택 5평 남짓한 화실 ‘잠흥원(고향 충남 서산 잠흥동의 이름을 땀)’에는 그가 그린 그림과 책장엔 인영집(印影集)이 가득했다. 그가 제작한 인감의 인영을 찍어두는 ‘인영집’은 한 페이지에 3~4개씩 모두 5권. 300명이 넘는 각계각층의 인사들이 그를 통해 인감을 만들어 갔다. “따로 광고나 홍보한 적은 없는데 한번 새겨간 분들을 통해 알음알음 찾아오더군요.” 이 화백은 원래 대한민국 미술대전에서 서화로 입선한 이후 꾸준히 작품활동을 해온 동양화가이다. 한국미술협회 성남지부장을 거쳐 경기도 미술대전 집행위원, 성남시 미술장식품 심의위원, 대한민국 명장 심사위원 등을 역임한 그가 인감의 글체와 다양한 문양에 심취하기 시작한 건 38년 전이다. “서화각이란 글과 그림을 소재로 한 일종의 조각기법이라 할 수 있어요. 회화성을 살린 서예, 문인화와 더불어 동양을 대표하는 특유의 예술이죠.” 흔히 일반적인 문자도안과 혼동하는 경우가 있는데 문자도안이 기술이라면 서화각은 예술성을 드러내는 점에서 차이가 난다는 게 이 화백의 설명이다. 특히 이 화백은 서화각뿐 아니라 자신의 작품임을 증명하는 증표(낙관)를 도장 위 몸체에 새기는 ‘방각(傍刻)’의 독보적인 기법을 선보여 그의 도장이 유명세를 타기 시작했다. 대개 상아나 값 비싼 돌 등에 의뢰인의 존칭과 함께 ‘평천(이 화백의 호)이 이 도장을 책임진다’는 의미로 ‘평천작(坪天作)’이라고 새기는 그의 도장은 보통 100여 만원의 의뢰비를 받는다. 김대중 전 대통령의 인감 제작비는 200만원이었다고. “내 인감은 단순한 도장이 아닌 예술작품이기에 정해진 가격은 없습니다. 전각은 도장의 기능을 뛰어넘은 독창적인 징표로 어느 특정한 장르에 속하기 어려운 예술분야가 아닐까 합니다.” 이 화백이 인감에 주술적 의미를 부여하기보다 개인의 성품을 아름다운 문자로 형상화시키는 작업에 몰두하고 있는 것도 그런 이유에서다. “단순한 도장이라고 생각하면 별것 아닌 것 같지만 인감도장은 그 사람의 이름이고 얼굴인 만큼 정성을 들이지 않을 수 없지요.” 도장은 글씨가 깔끔하게 찍혀야 하기 때문에 나무나 동물의 뼈에 새기는 것이 좋고, 낙관은 다소 거칠어도 옛 맛이 나는 돌에 새기는 것이 더 예술적 느낌이 난다는 이 화백의 설명이다. 이와 함께 인주도 경면주사로 만든 인주를 사용해야 도장을 찍어도 번지지 않고 원본이 오래 남는데, 요즘 국내에서는 제대로 된 인주 찾기가 쉽지 않다고 안타까워했다. 경기도 예술대상과 성남시민 문화상, 경기도민상, 성남모범시민상 등을 수상하기도 한 이 화백은 현재 청호불교문화원 상임이사로 활동하면서, 따스한 성품의 그가 가장 관심을 갖고 추진하고 있는 일은 어려운 청소년들을 돕는 장학금 지원사업이다. 좋은 인품과 뛰어난 예술성으로 지역 예술단체의 요직을 두루 맡아 활동해온 이 화백은 고희(古稀) 때는 지금까지 작업해온 ‘인영집’을 모아 출판할 예정이라며 “의외로 많은 사람들이 한자의 오기 등으로 잘못된 인감을 사용하고 있는 경우가 많은데, 사람들이 제대로 된 인감을 갖도록 하는 작은 소망이 있다”고 말했다. 정경숙 기자 chung0901@hanmail.net 저작권자 ⓒ 비전성남,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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