혹시 ‘새발의 피’보다 ‘조족지혈’이라 써야 더 품위 있다고 생각하시나요? “詩를 쓰고 싶으면 순우리말 사전을 보세요” 살사리꽃, 다소니, 가시버시… 정겨운 우리말입니다. “살사리 꽃이 무슨 꽃인지 아세요? 코스모스의 순우리말입니다. ‘다소니’는 사랑하는 사람이란 뜻의 순우리말인데 참 정겹죠?!” 미용사 중에서 등단한 작가가 있다기에 취재 갔는데, 느닷없는 순우리말 질문으로 기자를 당황케 하는 미용사 황미희(56) 씨. 그러고 보니 그녀의 작은 미용실 한 편에는 여느 미용실에선 흔히 볼수 있는 월간잡지 대신 월간문학지에 순우리말과 관련된 책들로 채워져 있다. 가위로 먹고 살긴 하지만 펜은 절대 못 버린다는 황미희 씨는 1997년 문예한국 수필로 등단한 작가로 수필집 <그림자는 없어도>와 시집 <가슴에 뜨는 달>을 내놨다. 그녀는 이미 여학교 때부터 김소월의 ‘진달래꽃’을 읊으며 안타까운 심정이었고, 한용운의 ‘님의 침묵’은 첫 대목에서부터 왈칵 울음을 터트렸던 문학소녀였다. 그 시절 그녀가 친구 집에서 우연히 보게 된 <국어대사전>(양주동저). 그 속엔 그녀가 궁금해 하던 수많은 단어의 별천지가 펼쳐져 있었다. 그래서 그 사전을 훔치고 말았다는 그녀는 그 사전을 40여 년 베개삼아 곁에 두고 보면서 생애 가장 아름다운 기억과 가장 양심이 따끔거리는 기억을 만난다고 했다. 그런 그녀가 그 사전 속에서 발견한 순우리말 ‘가시버시’. “처음엔 이게 뭐지?라고 생각했는데 소리 내서 읽어보니 정말 정겹고 아름다운 표현의 부부를 일컫는 말이더라고요.” 그 이후 순우리말에 관심을 갖고 글을 쓸 때는 순우리말 표현을 먼저 생각하게 됐다. 빗질(황미희)/ 잠포록한(날이 흐리고 바람기가 없다) 오후/ 잊었던 낭군이 찾아오듯/ 말알간 햇살 도톰하다/ <중략>조각달이 혜너르게(도량이 넓다)/ 실고혼 마늘각시/ 빗질해도/ 뭇별들의 수다는/시샘달의 검정새치(염탐꾼)였다. 모란 집에서 야탑 미용실까지 걷는 출퇴근길은 자연과 함께하는 그녀의 시상의 세계다. “그 길은 느리게 걷기에 좋은 길이에요. 고개만 돌려봐도 다른 세상을 보여주는 풍경이 있거든요.” 까만 새벽 문득 밖을 나가 소리 없이 내리는 비를 보며 가랑비, 보슬비,실비, 날비, 잔비 등 우리말의 다양한표현이 주는 아름다움에 경탄하며 감상에 젖고 만다는 그녀. “세상엔 아름다운 것이 참으로 많잖아요. 글을 쓴다는 것은 제게는 가슴 뛰는 일이어서 누가 알아주지 않아도 가위 들었던 손으로 글을 씁니다.” ‘새발의 피’보다 ‘조족지혈’이라 써야 더 품위 있다고 생각하는 불편한 진실 속에 사는 우리에게 그녀가 권한다. “혹시, 시를 쓰고 싶으시면 순우리말 사전을 읽어보세요. 순우리말 자체가 시라는 것이 느껴질거예요. 호호” 그녀의웃음소리가 참 맑았다. 정경숙 기자 chung0901@hanmail.net 저작권자 ⓒ 비전성남,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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