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고
광고

불씨 하나 곡우물 한 모금

4월 이달의 절기

  • 전우선 궁궐 문화유산 체험 학습지도사 | 기사입력 2014/03/22 [22:04] | 본문듣기
  • 남자음성 여자음성

4월 5일은 하늘이 차츰 맑아지고 화창해진다는 청명(淸明)이고, 20일은 ‘봄비가 내려 백곡이 기름진다’는 곡우(穀雨)다. 날이 화창해지는 만큼 농가의 손길도 안팎으로 바빠진다.

조선시대에는 오래된 불씨는 전염병을 일으킨다 해서 나라에서 일 년에 다섯 번에 걸쳐 새 불씨를 나눠 주었다.

봄에는 청명에 대궐에서 버드나무와 느릅나무를 비벼 새 불을 일으켜 정승, 판서와 문무백관, 각 고을의 수령에게 나눠 주었다. 이를 ‘사화(賜火)’라 한다.
 
수령들은 한식날에 다시 이 불을 백성에게 나눠 주는데, 묵은 불을 끄고 새 불을 기다리는 며칠 동안 밥을 지을 수 없어 찬밥을 먹는다고 해서 ‘한식(寒食)’이다.

우리 조상들은 집에 불씨를 묻어두고 불씨를 꺼뜨리면 집안이 망한다고 했다. 불은 생명력이다. 묵은 불을 끄고 새 불을 기다리는 며칠 동안 백성들은 새삼 불의 중요성과 신성함을 깨달았을 것이다.

봄의 마지막 절기인 곡우에는 못자리를 하기 위해 볍씨를 담갔다. 한해 농사를 좌우하는 중요한 시기이므로 이즘에는 죄인도 잡아가지 않았다고 한다.
 
그리고 못자리를 만들 때는 부부간 잠자리도 삼가고, 상갓집에 들렀거나 부정한 일을 봤을 때는 집 앞에 불을 피우고 그 불을 쬐어 악귀를 몰아낸 다음 집안으로 들어오고, 들어와서도 볍씨를 보지 않았다.
 
또 방아를 찧으면 볍씨들이 놀라 싹을 틔우지 않을까 봐 방아 찧는 것도 삼갔다. 이런 정성으로 시작하는 농사도 하늘이 돕지 않으면 소용이 없었다.

농부들은 지성이면 감천이라는 마음으로 논에 발을 들여 놓았을 것이다.
 
곡우 무렵은 나무에 물이 가장 많이 오르는 시기다. 물오른 나무의 수액을 받아 마시면 위장에 좋다고 해 전라도나 경상도, 강원도에서는 깊은 산속으로 곡우물을 마시러 갔다.
 
주로 자작나무나 산다래, 또는 박달나무에 상처를 내어 그 물을 마셨다. 경칩의 고로쇠 물은 여자 물이라 해서 남자에게 좋고, 곡우물은 남자 물이라 여자들에게 좋다고 했다. 못자리 준비로 바쁜 시기에 곡우물 한 모금이 짧은 휴식이었을 것이다.
 
곡우가 지나면 본격적인 농번기가 시작됐기 때문이다.

생동하는 5월은 우리의 일상도 바빠진다. 더 바빠지기 전에 몸과 마음의 묵은 불을 끄고, 곡우물 한 모금의 여유를 가져보는 건 어떨까.

전우선 궁궐 문화유산 체험 학습지도사 folojs@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