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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와 떠나는 성남역사기행(5)

  • 관리자 | 기사입력 2008/05/29 [17:26] | 본문듣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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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남의 천년고찰 봉국사와 망경암

고대에 불교문화가 융성했던 우리나라는 곳곳에 유서 깊은 사찰들이 있는데, 우리 성남지역에 있는 유서 깊은 사찰로는 봉국사와 망경암을 들 수 있다.

공주의 제사를 지내던 원찰, 봉국사
○… 수정구 태평동, 영장산 서남쪽 기슭에 위치한 봉국사는 고려초기인 1028년에 법현선사에 의해 창건된 천년고찰이다.(백곡대사 처능의 <백곡대각계록>에 창건기록 수록). 그 뒤 폐허화된 것을 1395년(태조 4년) 담화가 왕명으로 중수하였고, 현종 15년(1674년)에 이르러 요절한 두 공주의 명복을 빌기 위해 다시 중창되었다. 

현종이 아끼던 두 딸 명혜 공주와 명선 공주가 어린나이에 병사하자 그들의 무덤을 성남 지역에 썼다. 현종의 비 명선왕후는 딸의 명복을 빌기 위해 금강산에 있던 승려 축존에게 공주 묘 부근에 절을 세워 줄 것을 부탁한다. 
그리하여 근처에 있던 이 절을 다시 짓고 이름을 ‘봉국사’라 하였다 한다. 당시 봉국사가 공주들을 제사지내는 원찰로 지정되면서 근처에는 제사를 준비하는 000소가 있었고, 제사 준비하는 봉국사 일대가 ‘태평하여라’고 원하여 이 지역 이름이 ‘태평’이 되었다고 한다.

1950년 6.25 전쟁으로 대광명전을 제외한 당우(堂宇ㆍ정당(正堂)과 옥우(屋宇)라는 뜻으로, 규모가 큰 집과 작은 집을 아울러 이르는 말)들이 잿더미가 되었으며, 1958년에 대대적인 중수를 벌였다. 경기도 유형문화제 제101호로 지정된 대광명전은 1674년 봉국사 중창 때 세워진 것으로 추정된다. 1958년에 중수되었다가 1974년에 해체 복원되었다. 

원래 대광명전은 비로전의 또 다른 명칭으로 비로자나불을 모셔야 하는데 봉국사 대광명전은 목조 아미타불을 주존불로 모시고 있는 것이 특이하다. 경내에는 대광명전 외 삼성각, 심검당이 있으며 일주문ㆍ천왕문ㆍ범종루 등의 부속건물들이 있고, 1977년에 3층 석탑과 석등을 조성하면서 태국에서 모셔온 부처님의 진신사리 1과를 봉안하였다.

만해의 유일한 상좌(스승의 대를 이을 여러 중 가운데에서 가장 높은 사람)였던 춘성이 이 절에 주석하였으며 이후 그의 상좌 혜성, 혜성의 상좌 회주가 주석하였다. 지금은 회주의 상좌였던 효림 스님이 주지로 있다. 경내 뒤뜰에는 춘성을 모신 부도탑(고승의 사리를 안치한 탑)이 있다.
 
무학대사가 창건한 ‘망경암’
○… 봉국사에서 약 15분 정도 도보로 산을 오르면 서울의 강남과 송파지역이 한눈에 바라보이는 영장산 북쪽자락에 망경암(望京庵)이라는 조그만 암자가 있다. 이 절은 이름 그대로 대웅전과 마애불, 미륵불 모두 서울 쪽을 바라보고 있다. 고려 말 무학대사가 창건한 절로 여기서 서울을 바라보며 조선의 수도를 정한 곳이라고도 전하여진다.
 
조선이 개국한 이후에는 조선의 역대 제왕들이 친히 이곳을 찾아 나라의 평안을 기원했다고도 전하며, 15세기 후반에는 세종의 아들인 평안대군과 제안대군의 명복을 빌기 위해 칠성단을 세웠다고도 한다. 그 후 오랫동안 방치되어 오다가 1897년 이규승에 의해 다시 중창되었다. 

경내 대웅전 서쪽 바위에 작게 장방형 감실을 파고 그 안에 돋을새김으로 새겨진 마애여래죄상은 성남지역의 유일한 마애불로 경기도 유형문화재 102호로 지정되어 있다. 1897년, 비교적 최근에 조성되었으나 마모가 심하다. 그러나 조선 후기 마애불의 큰 특징이라 할 수 있는 불상의 조성시기, 시주자의 명단 등이 바위 위쪽에 빼곡히 새겨져 있다. 

사월 초파일이 들어 있는 오월, 가족과 함께 우리가 사는 지역의 산사를 찾아 그 정취도 맛보면서 문화재 탐방도 하고 조상의 숨결도 느껴보면 좋을 것 같다. 

도움말_성남시 학예연구사 진영욱 729-3013

전미향 기자 mhchun@cans21.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