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행나무는 공룡시대인 쥐라기(1억 3,500~1억8천만 년 전) 이전부터 지구상에 삶의 터전을 잡아왔다. 그 후 혹독한 몇차례의 빙하기를 지내면서 많은 생물이 사라져 버렸는데도 의연히 살아남은 은행나무를 우리는 ‘살아있는 화석’이라고 부르는 데 주저하지 않는다. 은행나무가 멸종되지 않고 살아남을 수 있었던 원인은 무엇일까? 무엇보다도 강력한 환경적응력 때문이다. 은행나무는 아무리 오래된 나무라도 줄기 밑에서 새싹이 돋아날 수 있는 능력을 갖고 있다. 또한 잎에는 항균성 성분들이 포함돼 있어 병충해가 거의 없다. 열매는 익으면 육질의 외피에 함유된 헵탄산 때문에 심한 악취가 나고 그 외에 피부염을 일으키는 긴토릭산 등이 들어 있어 새나 다른 동물들은 안에 든 씨를 발라먹을 엄두도 못 낸다. 씨앗을 먼 곳까지 보내는 것을 포기한 대신 동물의 먹이가 되는 것을 원천봉쇄한 셈이다. 또한 은행나무를 시집(장가) 보낸다는 말이 있다. 암수 그루가 따로 있기 때문인데 암수가 다른 나무인 은행나무 수꽃에는 머리와 짧은 수염 같은 꽁지를 갖고 있는 정충이 있다. 그래서 동물의 정충처럼 비록 짧은 거리지만 스스로 움직여서 난자를 찾아갈 수 있는 특별한 나무이기도하다. 참 신기하다. 현재 중국에만 자생지가 있다고 알려진 은행나무는 오래 사는 나무로도 유명하며 오래 살다 보니 사연 있는 은행나무도 많다. 전남 강진군에는 천연기념물 제385호로 지정된 ‘하멜 은행나무’가 있다. 《하멜표류기》를 보면 하멜은 이 은행나무 뿌리에 걸터앉아 고향을 떠올렸다고 한다. 또한 신라 마지막 임금 경순왕의 아들인 마의태자가 나라 잃은 슬픔을 안고 금강산으로 가는 길에 심은 것으로 알려진 경기도 양평군 용문사의 은행나무도 있다. ‘씨가 살구(杏)처럼 생겼으나 은빛이 난다’고 해서 은행이란 이름이 붙었다는 은행나무는 ‘심으면 종자가 손자 대에 가서나 열린다’고 해 공손수(公孫樹), ‘잎이 오리발처럼 생겼다’고 해서 압각수(鴨腳樹)라고도 불린다. 공자는 은행나무 아래에서 제자를 가르쳤다고 전해지는데, 벌레가 생기지 않는 은행나무는 사회의 유혹에 휘둘리지 않는 곧은 선비의 정신을 상징하는 것이라고 어떤 이는 해석한다. 그래서 글을 읽고 학문을 닦는 곳을 행단(杏檀)이라고 하며 서원에선 어김없이 은행나무를 만날 수 있다. 은행나무가 새삼스럽게 눈에 들어오는 이유가 있다. 2차 세계대전 때 원자폭탄이 투하된 히로시마에 은행나무가 있었다. 과학자들은 폭탄이 떨어진 후 어떤 생명체가 살아남았는지 조사했지만 그 참혹한 현장에서 살아남은 생명체는 아무것도 없었다. 그런데 이듬해 봄, 새까맣게 타버린 은행나무 줄기에서 새싹이 돋아났고 아주 더뎠지만 은행나무는 차츰 살아나며 놀라운 생명력을 보여 줬다. 공해에 대한 적응력이 강해 도시의 산소호흡기 가로수로서 역할을 톡톡히 수행하는 은행나무에게 자동차 매연 말고 도시에서 위협이 되는 것이 있는데 소금기라고 한다. 은행나무 앞에 식당이 있다면 음식물 쓰레기봉투를 나무줄기 곁에 모아두는 걸 흔히 볼 수 있다. 그 봉투에서 소금기가 조금씩 흘러나와 땅속으로 스며드 는데 그 소금기로 인해 아무리 빙하기를 견뎌낸 적응력 강한 은행나무라도 차츰차츰 죽어가는 수밖에 없다고 한다. 성남시의 나무가 은행나무여서 그런지 성남 곳곳에서 은행나무를 많이 볼 수 있다. 은행나무가 생명력이 강한 나무라고 하지만 산소호흡기 가로수의 역할을 잘해낼 수 있도록 우리가 고마운 은행나무를 잘 보살펴 줘야 할 것이다. 김기숙 기자 tokiwife@naver.com 저작권자 ⓒ 비전성남,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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