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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한산성에 다녀간 네덜란드인 하멜

  • 비전성남 | 기사입력 2015/01/26 [14:11] | 본문듣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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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한산성에는 다양한 역사와 사람들 이야기가 있다.
병자호란으로 인한 전쟁과청나라 사람과 관련된 이야기만 있는게 아니다. 
그 중 네덜란드의 하멜 일행이 남한산성을 다녀간 이야기가 있다.
하멜표류기에 따르면 하멜을 포함한36명 일행은 네덜란드 선박 스페르베르호를 타고 타이완으로 향하던 중 5일간 계속된 폭풍우를 만나 1653년 8월16일 제주도에 표류했다. 64명의 승무원 중 28명은 실종되고 살아남은 36명은 그 다음 해에 한양으로 압송된 후 훈련도감에 배속돼 낯설고 힘든 조선살이를 했다.
그러던 중 1654년 8월 청나라 특사가한양을 방문해 오자 조선 조정은 청나라특사가 한양을 떠날 때까지 하멜 일행을남한산성에 억류했다.
청나라 특사의 눈에 띄면, 외교적으로 골치 아픈 일이 생길 수 있다고 우려해서 그런 조치를 취한 것이다.
하멜에 의해 묘사된 남한산성은 다음과같다. “도성에서부터 약 45 내지 50킬로정도 떨어진 아주 높은 산 위에 있었는데, 가파른 오르막길을 약 15킬로 정도 올라가면 있었다. 그곳은 튼튼한 요새라서 왕이 전쟁 시에 피난하는 곳이었고이 나라의 고관이 살고 있었으며, 항상3년분의 식량이 저장돼 있어 수천 명의사람이 그곳에서 지낼 수 있었다. 
그 요새는 남한산성이라 했고 우린 청나라 칙사가 떠난 9월 2, 3일경까지 그곳에 있었다.”
그 후 1655년 4월 또 한 번 청나라 칙사가 왔다 귀환하는 길에 홍제동에 피신해있던 하멜의 일행 두 명이 칙사 행렬에뛰어들어 탈출을 시도하다가 붙잡혀 처형을 당하는 일이 벌어졌다. 이 일로 하멜과 남은 일행은 한양을 떠나 전라병영성에 유배됐다가 1666년 9월 관리가 소홀한 틈을 타 일행 8명은 일본으로 간 후네덜란드에 돌아갔다.
문맹이었던 대다수의 선원들과 달리, 하멜은 유일하게 글쓰기 교육을 받은 서기였다. 조선에서 14년간 체험한 사건들에 대해 날짜, 마을이름, 거리, 언어 등상세한 기록을 남길 수 있었다. 그가 남긴 기록은 하멜표류기와 조선왕국기의두 권으로 나뉘어져 세상에 나왔다.
네덜란드에서는 하멜표류기를 읽고 조선과 교역을 희망하고 1669년 동인도회사는 천 톤이나 되는 거대 상선을 만들고 이름을 “코레아호”라 명명하기까지했다. 그러나 조선과 네덜란드의 직교역을 원치 않던 일본의 방해로 뜻을 이루지는 못했다.
네덜란드에는 호르쿰 시 등에 하멜의 후손들이 하멜기념재단을 만들어 여러 가지 사업을 벌이고 있다. 최근 세계유산으로 지정되며 세계와 소통의 기회를 가지게 된 남한산성에 많은 국내외 사람들이 찾아와 좋은 만남을 이어가길 기대해본다.

김기숙 기자 tokiwife@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