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자동의 이름은 조선중기에 이천부사 겸 광주병마진관 등을 역임한 이경인(李敬仁, 1575~1642)이 ‘정자’를 짓고 학문에 전념한 데서 유래한다. 이경인은 1642년(인조2) 이괄의 난을 평정하는 데 공을 세워 원종공신이 되고 함흥판관, 안산현감, 이천도호부사에 제수됐다. 그는 병자호란의 치욕을 부끄럽게 여겨 벼슬을 내놓고 이곳 탄천변에 내려와 정자를 짓고 한운야학(閑雲野鶴)으로 소일했다. 그 후 그가 즐기던 ‘정자가 있는 마을’이라 해서 정자리(亭子里)로 부르게 됐고 그의 호 ‘정촌’도 여기서 비롯된 것이다. 또 정자나무가 있어서 정자말, 정자골, 정자동이라 했다고 한다. 정자동은 탄천(炭川)을 낀 지하철 정자역이 가까우며, 분당구의 남쪽 중앙부에 위치해 있다. 조선시대 광주군 돌마면 정자리와 낙생면 금곡리 일부의 농촌마을이 그동안 몇 차례 관할구역 변경에 의해 1996년 1월부터 정자동이 신설됐고, 경계조정으로 2001년 1월 정자1동이 탄생됐다. 정자1동은 고층 대형아파트가 20여 단지 밀집된 도시마을에다 정자역 벤처타운 안의 ‘킨스타워’에는 국내 최대 첨단기업체들이 입주해 활기를 띠고 있다. 자료 <내 고장 성남> 성남문화원, 2008 外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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