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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서각산책] 전통시대 지진의 생생한 기록

  • 비전성남 | 기사입력 2017/11/22 [15:40] | 본문듣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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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6년, 도굴 피해를 본 불국사 석가탑을 해체하면서 시루떡처럼 뒤엉킨 종이뭉치가 발견됐다.

이 종이뭉치를 하나하나 해체하자 놀라운 사실이 드러났다. 고려 초기인 1024년과 1038년에 각각 석가탑, 혹은 다보탑을 고쳐 쌓고 그 내력을 기록한 문서였다. 이로써 석가탑과 다보탑은 신라 경덕왕 때 처음 쌓은 이래 단 한 번도 고치지 않았다는 신화가 붕괴됐다. 더욱 놀라운 사실은 당시 석가탑이 경주 일대를 엄습한 지진에 막대한 피해를 입어 대대적으로 수리됐다는 사실이었다. 이 문서에서는 ‘지동(地動)’이 있었다고 기록돼 있다. 땅이 흔들린다는 지동, 바로 지진(地震)이다.

석가탑이 지진으로 붕괴할 무렵, 한반도는 지진 다발 지역이었다. 특히 경주가 심했다. 제주 한라산이 화산 폭발을 일으킨 것도 바로 이 시점이다. 현종 10년(1007)의 기록을 보면 이때 광경을 현지인 증언 형태로 채록했는데, “산이 처음 솟아나올 때 구름과 안개가 어두컴컴하고 땅이 움직여 우레 소리가 나는 듯하더니, 무릇 7일 낮밤이 지난 뒤에야 비로소 구름과 안개가 걷히니, 산은 높이가100여 장(丈)이나 되고 둘레는 40여 리(里)가 되며, 풀과 나무는 없고 연기가 산위를 덮으니 이를 바라보면 석류황(石硫黃)과 같아 사람들이 두려워 가까이 갈 수 없다”고 적었다.

신라시대에도 경주 부근은 지진 다발 지역이었다. 삼국사기를 보면 태종무열왕 4년(657) 7월, 경주 동쪽 토함산 땅이 불타더니 3년 만에 꺼지고 흥륜사 문이 저절로 무너졌다고 썼다. 땅이 불탔다는 것으로 보아 지진과 함께 화산 폭발이 동반됐을 것으로 짐작되지만 현재 토함산 일대에서는 이렇다 할 화산 분출 흔적은 발견되지 않는다. 혜공왕 2년(766) 2월에는 지금의 진주인 강주(康州)에서 땅이 함몰해 연못으로 변했는데, 그 넓이가 50여 척이고 물빛이 검푸른 색이었다. 13년 후에는 수도에 지진이 나서 민가가 무너지고 사망자가 백여 명에 달한 일도 있었다.

지난해 경주에 큰 지진이 오기 석 달 전, 울산 동구 동쪽 52㎞ 해상에서 규모 5.0의 지진이 발생했다. 동해 앞바다의 지진 소식을 접한 국립경주박물관은 더 큰 지진이 올 가능성에 대비하기 위해 곧바로 대책을 마련하고 실행에 옮겼다. 모든 전시품을 묶어 두는 것이었다. 부처님도 끈으로 꽁꽁 묶는가 하면, 세워서 보여주던 토기들은 누이고 모래로 채운 후 다시 묶었다. 석 달여가 흐른 9월 12일, 경주를 진앙으로 강력한 지진이 발생했다. 지진은 전국을 흔들었다. 규모 5.8의 지진은 지진 관측 이래 한반도에서 발생한 가장 강력한 규모였다. 그 피해 역시 막대했다. 하지만 국립경주박물관 유물은 단 한 점도 손상이 없었다.

최근 경주 부근 포항에서 다시 규모 5.4의 지진이 발생해 적지 않은 상흔을 남겼다. 급기야 수능까지 1주일 미루게 했다. 자연의 위력이 새삼 두렵다. 한반도에서 지진의 피해를 최소화하며 다시 올지 모르는 지진에 대비하는 것 또한 조상들의 지혜에 담겨 있을 것이다.
 
█ 지진 발생 시 국민행동요령(행정안전부) http://www.mois.g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