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해가 되면 우리 조상들은 조상께 올리는 정성스러운차례로 새해를 맞았다. 차례를 지내기 하루 전에 차례 지낼 곳을 청소하고, 제구와 제기를 꺼내 깨끗이 닦고, 차례 상에 올릴 술과 음식을 준비했다. 모사(茅沙)와 양초, 향도 준비하고 지방과 축문도 미리 써두었다. 요즘도 차례에 임하는 자식 된 마음이야 다 똑같겠지만, 차례나 제사를 떠맡는 부담은 장남과시집간 딸이 똑같지는 않다. 한국학중앙연구원 장서각에서 수집한 해남윤씨 연동종택의 고문서를 살펴보다가 흥미로운 편지를 발굴하고 지금과는 사뭇 다른 우리 조상들의 설밑 풍경을 그려본다.1664년 12월 26일, 새해를 며칠 앞두고 윤선도의 장남 윤인미의 집에 한글 편지 한 통이 배달됐다. 이 편지는 윤인미의 처 전주유씨에게 그녀의 동생인 유정린이 보낸 것이다. 유정린과 형제들은 부모가 죽자 남은 재산을 서로 협의해 나눴다. 상속 대상은 유정린과 윤인미의처를 포함해 적자녀 10명이었다. 윤인미의 처는 멀리 해남 땅에 살아 직접 회의에 참여하지 못했다. 그래서 유정린은 누나에게 10남매가 나눠 갖은 상속 몫뿐만 아니라 앞으로 10남매가 돌아가며 맡아야 할 제사에 대한 내용, 그리고 이것의 비용 충당 문제 등 제반 사항을 알렸다. 우리 선조들은 17세기 중엽까지는 균분(均分)상속을 고수했다. 부모가 남긴 재산을 장남이나 차남, 딸 관계없이 골고루 나눴다. 전주유씨 10남매가 모여서 각자 가질 몫을 따져 보니, 노비가 일곱씩이고 토지는 대략 밭 엿새 갈이씩과 논다섯 마지기씩이 돌아갔다. 그렇다면 출가한 딸인 윤인미의 처는 친정에서 얼마의 재산을 받았을까? 그녀가 받은 재산은 강화도의 논밭,도망간 노비 1명과 결혼할 때 이미 받은 신노비를 포함해 8명의 노비이다. 그러나 이 편지에서 동생 유정린이 진짜 하고 싶은 말은 따로 있었다. 장남이지만 유정린은 사정이 좋지 않았다. 상속받은 노비들은 죽고 달아나서 영 제 몫을 못하는데, 이를 포함해서 분재를 하다 보니 실제로는 겨우 노비 하나를 더 받았을 뿐이었다. 유정린은 장자이기 때문에 법에 따라 종 둘과 밭 하루갈이와 논 세 마지기를 더 받았다. 그러나 이는 사당제사에 쓰기에 턱없이 부족했다. 다른 동생들의 형편도 어렵기는 마찬가지였다. 비교적 여유 있는 누나는 이러한 동생들의 팍팍한 형편을 생각해 자기의 몫으로 오는 소작료를 제사 비용으로 쓰도록 양보했다. 이 편지는 부모님 사후에 처음으로 새해를 맞아 돌림제사가 임박했으니 전에 누나가 한 약속을 확실히 해달라는 뜻에서 보낸 것이다. 부모의 재산을 똑같이 상속 받았다면 장자만이 제사를 맡아 지낼 이유가 없다.자식들은 제사의 의무도 똑같이 짊어져야 한다. 자식들은 순서대로 제사를 맡았다. 누나는 동생의 형편을 감안해 자기 몫인 소작료를 양보했지만, 자기가 맡은 돌림제사의 의무는 다했다. 해남윤씨 연동종택에는 전주유씨의 형제들이 돌림제사를 맡아 지낸 기록들이 남아있다. 기록을 보면 윤인미의 처는 살아생전 총 16번의 친정제사를 모셨다. 자식들은 똑같은 비율로 부모의 유산을 나누고 조상에 대한 책임을 다했다. 그리고 형제들이 처한 딱한 형편을 서로 감안해 주는 따뜻한 형제애를 확인할 수 있었다. 우리도 새해에 집안의 크고 작은 일을 치르면서 선조들의 현명한 판단을 떠올려 보았으면 한다.
저작권자 ⓒ 비전성남,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
많이 본 기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