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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사도 ‘노동’이다 1

전업주부의 집안일, 사회의 노동으로 바라보는 재평가가 필요하다

  • 비전성남 | 기사입력 2018/07/04 [10:24] | 본문듣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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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심히 일해도 표시가 안 나고 해도 해도 끝없는 일은 무엇일까? 정답은 ‘집안일’이다. 청소와 세탁, 요리, 육아 등 집안에서 하는 일은 끊임없이 반복되고 이어진다. “밭 갈래, 애 볼래?” 물어보면, 밭가는 일을 한다고 했다는 옛말이 있다. 일은 중간에 쉴 수도 있고, 끝나는 시간이라도 정해져 있지만 아기를 돌보는 일을 포함한 가사 일은 쉬는 시간도 없고 끝나는 시간도 없기 때문이라고 한다. 
 
하루 종일 일한 다음 가정에 돌아가 휴식을 취하며 다음날 일할 수 있는 에너지를 비축할 수 있는 것은, 가사노동에 종사하는 가족의 희생이 있기 때문이다. 20세기 후반의 위대한 사상가로 꼽히는 이반 일리치는 가사 노동을 ‘그림자 노동’이라 칭하며 “인간의 창조적 능력을 노동에 묶어두기 위해서는 사랑과 돌봄으로 치장된 가정의 천사가 필요하다”고 비판했다.  
 
가사 노동은, 산업사회에 필수적인 재화와 서비스를 생산하는 데 꼭 필요한 보완물이지만 어디에서도 급여를 받지 않는 무급 노동이다.
 
케이시 윅스 듀크대 여성학교수는 저서 ‘우리는 왜 이렇게 오래, 열심히 일하는가?’에서 2차 대전 직후 하루 8시간, 주 5일 근무가 표준이 된 것은, 남성 노동자가 집안의 여성에게 보조를 받는다는 전제에서 나온 노동시간이라고 설명한다. 남성 노동자가 무급 가사노동을 책임져야 했다면 이러한 노동시간은 상상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그는 주 30시간 노동과 기본소득 제공을 대안으로 제시하고 있다. 미국의 사회학자 줄리엣 쇼어도 가정 내 재생산 노동(무급)을 풀타임으로 담당하는 여성의 비율이 높지 않았다면 8시간 근무제도는 결코 발전하지 못했을 것이라 말한다.
 

요즘은 여성뿐 아니라 남성 전업 주부도 낯설지 않은 세상이다. 그동안은 어머니의 노동이 사회의 모든 생산을 만들었으나, 이제는 성별이 아닌, 상황에 따라 남·여 구별 없이 전업주부의 역할을 맡고 있다. 국어사전에서는 다른 직업에 종사하지 않고 집안일만 전문으로 하는 주부를 전업주부라 부른다. 출퇴근도 없고, 휴일도 없는 전업주부들은 스스로를 ‘무급 가사도우미’라 부르며 자조하기도 한다.
 
하지만 전업주부의 일에도 경제적 부가가치가 있다. 2018년 법적 최저 임금인 7,530원을 24시간으로 계산하면 하루 임금은 18만 원이다. 한 달 기준으로 하면 월급이 540만 원. 연봉으로 치면 6,570만 원으로 웬만한 고액 연봉자들 수준이다. 물론 이렇게 실제로 월급을 받으면서 일하는 전업주부는 거의 전무하다.
 
임금 노동과 가사 노동을 동등하게 생각하지 않는 사회적 분위기, 가사 노동을 집안일로 축소시켜 노동으로 인정하지 않는 시선은 전업주부를 더욱 힘겹게 한다. 남성과 여성 모두 전업주부는 육아로 경력이 단절되고, 다시 사회로 진입할 때 필요한 기회비용을 감수하며 가사노동에 매달려 있다.
 
이제 성별을 떠나 가사노동을 계속 무급으로 유지할 것인지, 하나의 노동으로 인정하고 사회적 임금 대상에 포함시킬지에 대한 사회적 논의가 절실한 시점이다.
  
취재 이훈이 기자 exlee100@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