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업주부에게 가정은 ‘일터’다. 이제는 가사노동을 단순히 안정적인 가정 유지에 대한 기여도를 넘어, 비노동에서 노동으로 바라봐야 한다는 목소리가 점차 높아지고 있다.
한국방송대 유범상 교수는 “아직까지 우리 사회에서 주부의 가사노동은 상품으로 부름받지 못했습니다. 이제는 가사노동도 단순히 집안일(비노동으로 인정됨)이 아니라 사회의 중요한 노동으로써 가치를 새롭게 따져봐야 합니다. 서유럽에서는 가사노동을 사회화하고, 정부에서 수당이 나오기도 합니다. 이제는 우리도 가사노동을 사회화해 임금노동으로 만들어야 하고, 이 부분에 대한 사회적 논의가 시작되어야 합니다”라고 설명한다.
과거에도 가사노동의 경제적 가치에 대한 측정이 시도됐는데, 1999년 성균관대 김준영 교수는 생활기초조사 자료를 바탕으로 전업주부의 한 달 노동가치를 113만 원 정도로 추산했다. 한국여성정책연구원은 2008년 12시간 동안 살림을 하며 자녀 둘을 키우는 전업주부의 노동시간 대비 월급을 약 371만 원으로 측정한 사례가 있다. 그러나 이런 계산법은 현실과는 거리가 멀다. 법원은 전업주부의 교통사고 피해보상금 계산 시 일용직 건설 노동자의 평균 임금인 일용노임을 기준으로 하는데, 2018년 상반기 현재 일용노임은 10만9,819원이다. 휴일이 없는 가사노동의 특성상 전업주부의 연봉은 약 4천만 원으로 평가되고 있다.
법무법인 다산의 김춘희 변호사는 “전업주부의 노동가치를 단순히 일용노임에만 기준해 평가한다는 것은 대단히 잘못된 일입니다”라고 말한다. 가사노동에는 청소, 세탁, 요리 등 단순 육체노동뿐 아니라 육아, 교육, 간병 등 가족과 가정을 돌보고 관리하는 돌봄노동도 포함되며, 이러한 돌봄노동이 더 본질적이고 중요하다고 할 수 있기 때문이다. “가사노동의 종류, 일하는 시간, 업무의 강도, 돌봐야 하는 어른과 자녀의 수, 돌봄노동의 정도 등 광범위하고 다양한 일들을 두루 평가해서 현실화시켜 반영할 필요가 있습니다. 단순 일용노임으로 평가절하 돼서는 안 되지요. 이제는 우리도 가사노동에 대한 사회적 고민과 재평가가 시급합니다.” 김춘희 변호사의 설명이다. 다행히 최근 법원은 혼인기간에 비례해 가사노동의 기여도를 점차 높게 인정하는 추세다. 외부 경제활동에 종사하지 않은 배우자라 할지라도 가사노동을 통해 재산의 유지 증식에 기여했다고 판단하고 있고, 이러한 경향은 점차 강화되고 있다. 아직 많은 사람들은 가사노동이 사회와 상관없는, 각 가정의 몫이라고 생각한다. 또 가사노동에 대한 사회적 임금을 지급하는 것보다 복지사각지대 등 더 어려운 곳에 도움이 더 필요한 것이 아니냐고도 반문한다. 시간이나 범위가 정확하지 않기 때문에 책정에 어려움도 발생할 수 있다. 하지만 더 이상 전업주부의 희생만을 강요할 수 없다. 저출산 등과 같은 심각한 사회문제도 연결돼 있다. 당장 시행이 어렵더라도 문제를 공론화하고 선진국의 사례를 바탕으로 가사노동에 대한 새로운 패러다임을 만들어 나가야 한다. 백범 김구는 “오늘 나의 발자국은 뒷사람의 이정표가 되리니”라는 말을 남겼다. 집안일로만 폄하됐던 가사노동을 이제는 국가와 사회차원에서 노동으로 인정하고, 어떻게 해야 세금의 재분배가 공정해지면서 후대에 좋은 선례를 남길 수 있을지, 우리 모두 선배 시민으로서 고민해야 될 때다. 취재 이훈이 기자 exlee100@naver.com 저작권자 ⓒ 비전성남,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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