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남여성의전화는 양성평등주간(매년 7월 1일부터 7월 7일까지)을 맞아 성남미디어센터에서 제8회 여성인권영화제를 개최하고 있다.
주제는 ‘감춰진 이름을 드러내다’. 3·1운동 100주년을 맞아 특별 주제로 제국주의와 여성, 여성독립운동가, 여성과 전쟁 관련 영화를 상영한다. 일상적으로 작동되는 차별과 폭력에 대한 인식을 확산하고 관련 전문가가 진행하는 관람객과의 대화를 통해 문제 해결을 위한 방향성을 제시함으로써 여성인권의식을 고취시키기 위한 취지다.
7월 1일 오전 10시, 개막작 ‘대한의 독립과 결혼하다 – 김마리아’가 상영됐다. 동경여자학원(현 동경여자대학교) 수석졸업을 앞두고 일본 유학생들이 만든 2·8독립선언문의 국내 반입을 위해 과감히 학업을 중단한 그는, 대한독립의 별로 불린다. 신체를 태우는 고문에 피골이 상접한 몸으로 망명해 유색인종에 여성이라는 차별을 받으면서도 미국의 시카고대학, 뉴욕신학대학 등에서 유학을 마쳤고, 일제의 판결문에도 ‘인격과 재질이 비범한 천재’라고 서술될 정도였다.
“독립이 성취될 때까지 우리는 자신의 다리로 서야 하고, 우리 자신의 투지로써 싸워야 한다”, “여성도 실력을 갖춰야 한다, 실력이 국력이다”라는 지론을 펼쳤던 김마리아.
관객과의 대화를 진행한 김정인 춘천교대 교수는 “‘현모양처’는 일제 강점기 때 우리 민족을 복종시키려고 부각시킨 표현”, “해방 직후 일본의 만행만 강조했는데, 알려지지 않은 여성독립운동가, 무명 독립지사를 찾아내는 것이 더 중요하다. 역사는 성찰을 위해 존재한다”, “대한의 독립과 결혼했다고 한 것은 사실이나, 비혼임을 지나치게 주지하는 등 남성적인 시각에서 재조명하는 것은 삼가야 한다”라고 인권의식과 여성주의적 입장 등 또 다른 시각에서의 재해석을 강조했다.
이어진 영화는 ‘보이지 않는’. 연쇄 성폭력 사건의 생존자인 두 여성이 20년 뒤에 만나 과거를 복기하는 과정이다. 성폭력 생존자 여성들의 기억과 상처, 사회적 재현을 차분하면서도 강인하게 표현했다. 창 너머 암흑 속에 ‘보이지 않게’ 잠복해 있는 폭력, ‘보이지 않는’ 상처의 이야기다.
영화 상영 후 한의사이자 평화운동가 고은광순의 진행으로 관객과의 대화 시간을 가졌다. 고은광순은 평화운동이 무엇인지 묻는 질문에 모든 차별과 폭력에 반대해 여성주의, 동학, 평화주의 등을 고루 접목시킨 ‘귀한 우리, 함께 잘 살자’ 운동에 대해 설명했다.
동학과 평화가 어떤 연관이 있는지 묻는 질의도 이어졌다. “양반과 백정, 남자와 여자가 서로 귀하게 여기며 존대하고 맞절하는 동학은 종교가 아니라 삶의 철학”, “호주제 폐지도 차별을 없애고 다 같이 존중하자는 동학의 정신, 만물평등사상이 깔려 있다. 서양의 자유주의보다 더 근원적인 우리의 정신으로 폭력 없는 세상, 평화로운 세상을 만들자”는 그의 설명에 고개를 끄덕이는 관객들도 많았다.
“대한독립여자선언서 등 여성들이 독립운동에 앞장선 일이 많았는데, 너무 알려지지 않은 것 같아 안타깝습니다. 좋은 영화도 보고, 일상 속의 인권에 대해서도 다시 생각해 보는 귀한 시간이었습니다. 여성이 일궈가는 평화, 인권, 성, 평등에 대해 말할 수 있는 여성인권영화제네요. 5일까지 계속 오려고 합니다.” 관람객들의 얼굴이 환하다.
2일에는 군대 내 성폭력을 다룬 “또다른 전쟁”, 전쟁으로 상처받은 아프가스탄 여성들의 목소리를 담은 “모래알갱이가 있는 풍경”이 상영됐다. 3일에는 여행 중 전쟁의 참상을 알게 된 여성의 이야기 “그녀들을 위하여”, 4일에는 정신대 할머니들의 일상이 담긴 “낮은 목소리”, 5일에는 임시정부 안주인이었던 수당 정정화의 “독립투사가 되다”, 미군 기지촌 여성을 그린 “아메리칸 엘리”까지, 모두 8편을 상영한다. 입장료는 무료, 영화 상영 후 영화감독, 신학자 등 관련 전문가와의 토크가 진행되며, 연령제한 없이 누구나 영화를 볼 수 있다. 취재 이훈이 기자 exlee1001@naver.com 저작권자 ⓒ 비전성남,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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