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남시민 독서 릴레이 ⑨ 김의경 소설가] 가짜 웃음 지으며 병들어가는 감정노동자들

앨리 러셀 혹실드(Arlie Russell Hochschild)의 『감정노동』

비전성남 | 기사입력 2019/08/29 [14:49]

 
『감정노동』
앨리 러셀 혹실드 (Arlie Russell Hochschild)
지음 이가람 옮김, 이매진 펴냄  © 비전성남
 
화가 나지만 즐거운 척 슬프지 않지만 슬픈 척, 누구나 속마음과는 다른 표정을 지은 경험이 있을 겁니다. 살다 보면 때때로 속내를 숨겨야 할 일이 있으니까요. 하지만 그런 감정관리를 일터에서 상시적으로 해야 한다면 어떨까요?

대학을 졸업한 이후로 수년간 불안한 일자리를 전전한 저는 2010년 초, 출간된 지 얼마 안 된 이 책을 만났습니다. 처음 이 책을 보았을 때 ‘감정노동’이라는 글자에서 오래도록 시선을 뗄 수 없었습니다.

그것은 내가 경험한 것인데도 지칭하는 적당한 말이 없어 어떤 말로 표현하면 좋을지 알 수 없었던 바로 그것이었습니다. 나를 괴롭고 비참하게 만들고도 침묵하게 하는 것, 일이 끝나고 나서도 내 몸에 들러붙어 집까지 따라와 정신적 고통을 주던 그것, 바로 감정노동이었습니다. 지금은 감정노동이라는 말을 쉽게 들을 수 있지만 당시만 해도 생소한 말이 었습니다. 이 책의 저자 ‘앨리 러셀 혹실드’가 처음으로 개념화한 말이었으니까요.

이 책에서는 승무원들의 감정노동을 중점적으로 들여다봅니다. 모욕을 주는 손님 앞에서도 진심에서 우러난 웃음을 지어야 하는 승무원, 솔직히 그런 웃음을 짓는 것이 가능하기나 할까요? 
 
이 책에 등장하는 승무원을 교육하는 강사는 화난사람 앞에서 분노를 누그러트리는 방법으로 그 사람의 삶에 뭔가 커다란 상처가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을 제안합니다. 숨을 깊게 들이쉬고 혼잣말을 하면서 “집에 가면 안 볼 사람이다”라고 되뇌는 것도 승무원에게 제시된 감정 관리 방법 중 하나입니다. 그런 방법들은 조금은 효과가 있는 것 같지만 일시적일 뿐 많은 감정노동자들은 우울증에 시달리고 스트레스 질환을 앓게 됩니다. 승무원들은 이런 감정노동으로부터 자신을 지키기 위해 일할 때의 자신과 본래의 자신을 분리해야 했습니다.
 
우리는 승무원이 아니기 때문에 감정노동으로부터 자유로울까요? 저자는 그렇지 않다고, 오히려 우리 모두 부분적으로는 항공 승무원이라고 볼 수 있다고 말합니다. 자신의 상사가 ‘활기에 넘치시는 분’으로 보일 수 있게 사무실 분위기를 명랑하게 만드는 비서, 고객들이 스스로 보살핌을 받고 있다고 느낄 수 있도록 염려하는 마음을 담은 눈길을 건네는 사회복지사, 보고 있으면 두려움을 느끼게 되는 추심원, 유족들의 심정을 잘 이해해 준다는 느낌을 주는 장의사 등 모두 어떤 식으로든 감정노동을 해야하는 상황에 맞닥트릴 수밖에 없다고 말합니다.
 
이 책을 처음 만난 이후로 일정 시간이 흐른 2013년에도 저는 강도 높은 감정노동이 요구되는 콜센터에서 상담사로 일하고 있었습니다. 그곳에서 저는 눈앞에 보이지도 않는 사람에게 미안하다는 말을 해야 했고 진상고객에게마저도 상냥하게 응대해야 했습니다. 거짓 미소로 감정을 소진하고 나면 비참하고 허무한 감정에 휘감길 때가 있었습니다.
 
저는 그 일로부터 저를 지키기 위해서 콜센터에서 진상고객의 비위를 맞추는 저와 본연의 자아를 애써 분리했습니다. 일이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하는것이지 나는 비굴한 사람이 아니라고 스스로에게 되뇌었습니다. 하지만 그때의 기억은 쉬이 잊히지 않고 제 안에 남아 수 년 뒤 『콜센터』라는 소설을 쓰게 했습니다.

이 책 『감정노동』을 읽은 후 저는 누군가의 감정노동을 통해 내가 즐거울 때 나를 즐겁게 한 누군가는 그 가짜 감정으로 인해 가면 뒤에서 눈물 흘릴 수도 있다는 사실을 떠올리게 됐습니다.지난 10월부터 감정노동자보호법이 시행됐습니다. 감정노동자보호법이 시행되는 지금, 지나치게 강요된 감정노동을 통해 제공받는 서비스가 과연 우리를 행복하게 만들 수 있을지 생각해봐야 하지 않을까요?

성남시민 독서릴레이 10월 주자는 성남의 대표적문화공간인 동네서점 ‘비북스(BeBooks)’를 책임지고 있는 ‘김성대’ 대표에게 부탁합니다. 비북스에 방문할 때마다 숨어 있는 좋은 책을 추천해 주시는데요, 다독가이신 김성대 대표님이 어떤 책을 추천해 주실지 벌써부터 궁금합니다.
 
기고 소설가 김의경


성남시민 독서 릴레이는 시민과 시민이 책으로 만나고 소통하는 공간입니다.
① 은수미 성남시장 『건지 감자껍질파이 북클럽』 → ② 노희지 보육교사 『언어의 온도』 → ③ 일하는학교 『배를 엮다』 → ④ 이성실 사회복지사 『당신이 옳다』 → ⑤ 그림책NORi 이지은 대표 『나의 엄마』, 『어린이』 → ⑥ 공동육아 어린이집 ‘세발까마귀’ 안성일 선생님 『풀들의 전략』 → ⑦ 구지현 만화가 『날마다 도서관을 상상해』 → ⑧ 이무영 영화감독 『더 로드(The Road)』 → ⑨ 김의경 소설가 『감정노동』 → ⑩ ‘비북스’ 김성대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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