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을 책을 고를 때 화제가 된 책이나 제목, 표지, 디자인에 이끌려 선택했던 저에게 이번 '블라인드 북'은 작은 도전이자 설레임이었습니다. 키워드를 보고 고르긴 했지만, 책 포장을 여는 순간까지 선물을 받았을 때처럼 궁금하고 설레는, 기분 좋은 경험을 하게 됐습니다. 도서관에서 이번처럼 늘 크고 좋은 이벤트를 열어주셔서 감사한 마음으로 이용하게 됩니다. 아직 도서관 이용을 잘 모르시거나 부담스러워 하시는 분이 있다면 용기를 내어 첫발을 내딛으셨으면 좋겠습니다.' 성남시 수정도서관에서 '블라인드 북(Blind Book)'을 대출한 이용자가 설문지에 쓴 소감이다. 이용자가 대출한 블라인드 북은 『나는 매일 도서관에 가는 엄마입니다(이혜진 지음)』다. 책을 읽은 감상까지, 정성 가득한 손글씨로 남겼다.
수정도서관은 12월 4일부터 2층 로비 북큐레이션 서가 '어쩌면 인생 책'에서 블라인드 북을 전시·대출 중이다. '블라인드 북'은 제목과 표지가 보이지 않도록 포장한 다음, 그 책을 나타내는 키워드와 책 속 구절을 따로 써서 붙인 후, 끈으로 묶었다. 키워드와 책 속 구절을 보고 읽고 싶은 책은 대출하면 된다. (1인1권 안내데스크에서 대출 가능)
블라인드 북 50권은 수정도서관에서 매달 선정하는 추천도서 중에서 골랐다. 취재 당일인 15일까지 30여 권이 대출됐다고 한다. 자리를 지키고 있는 책들을 살펴봤다. '#다정한 물리, #~질병의 사회사'라는 키워드에 끌려 읽고 싶은 책도 있고, 작가가 짐작 가는 책도 있다. 책 속 구절만으로도 책을 다 읽은 듯 마음이 훈훈해지기도 한다. '노력의 기쁨. 그렇다. 나답게 힘을 냈다면 모든 '열심'은 좋거나 더 없이 좋은 상태다. 이겨도 좋고 져도 좋은 것. 진정한 열심이란 그런 것이다. 뒤돌아 생각했을 때 열심히 한 일들은 감정의 찌꺼기를 남기지 않는다. 그래서 실수하거나 실패해도 그 시절의 나를 미워하지 않을 수 있다. 오히려 즐겁고 아름다운 추억으로 남는다. #내인생에집중 #어제보다나은오늘 #노력노력!'
올 한 해를 돌아보게 하는 구절이다. 대학교 졸업반 박산아 씨도 이 책에 시선이 멈춘다. 마지막 두 문장에 끌렸다고 한다. 일주일 전에 대출한 블라인드 북은 시험기간이라 많이 읽지 못했다며 웃는다. 블라인드 북에 대해 "마땅히 읽고 싶은 책이 없거나 책을 고르기 힘들 때, 선입견 없이 책을 고를 수 있어 좋다. 빌리기 전까지는 책에 대해 모르니까 호기심이 생기고, 제목이나 표지, 내용 등을 유추해 보는 게 재미있다. 도서관에 오는 즐거움이 하나 더 생겼다"고 한다. 수정도서관의 이용자들과 더 가까워지려는 새로운 시도에 대해서는 "아이부터 성인까지 다양한 프로그램과 행사가 꾸준히 열린다. 이용자들이 책에 관심을 갖고 가까워지는 계기, 독서에 대한 관심을 지속할 수 있는 기회"라고 생각한다.
선입견 없이 책을 골라보는 기회를 만들어, 독서에 대한 호기심을 자극하고, 책 고르기에 어려움을 겪는 독자들에게 새로운 독서기회를 마련하는 것! 수정도서관이 '블라인드 북'을 기획한 가장 큰 이유다. 연말을 맞아 독서로 2019년을 마무리하고, 새해에 독서 계획을 세우도록 동기부여, 균형 잡힌 개인 독서 환경 조성, 도서관 이용 활성화라는 기대도 있다. 블라인드 북 포장에 보이는 '온고지人'(온고지인)은 수정도서관의 브랜드 전략으로 '역사와 추억을 품고 사람을 말하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수정도서관 자료봉사팀 박윤정 팀장이 도서관에 정말 자주 오시고, 자원봉사도 하신다며 소개한 현경화 어르신은 블라인드 북 설명을 듣자마자 "요즘 사회 뉴스도 그렇고 결혼과 육아, 교육에 대해 관심이 많다"며 한 권을 고르셨다. 그 자리에서 바로 끈을 풀어 책을 보시고 반납일까지 확인하신 후에 대출하셨다.
산성동 주민 강봉주 씨는 "직업이 약사기도 하고, 가까운 어르신들이 돌아가시는 걸 지켜보면서 삶과 죽음에 관심이 더 많아졌다. 사서가 써놓은 구절이 와 닿는다"며 책을 빨리 읽고 싶다고 한다. 그리고 도서관에 오면 바로 3층 문헌실로 직진하는데 오늘은 새로운 것이 눈에 들어와서 둘러봤다며 "책을 골라서 문장을 찾고, 하나하나 손글씨로 쓰고, 포장하는 정성이 놀랍다. 정성이 대단하고 고마워서 더 대출하고 싶었다"며 크게 웃는다.
블라인드 북을 전시한 북큐레이션 서가 '어쩌면 인생 책'은 수정도서관 2층에 들어서자 마자 눈에 들어온다. 사서가 도서관 이용자들의 도서 선택을 도와주고, 방금 도착해 따끈따근한 신간 도서들을 문헌실 서가로 옮기기 전에 미리 전시하는 특별 전시 공간이다. 서가는 사회복무요원이 재능을 살려 디자인했고, '어쩌면 인생 책'이라는 명칭은 도서관 직원들에게 공모를 해서 선정했다.
올해 3월 '한 도서관 한 책 읽기' 관련 도서를 시작으로, 잡지, 큰글자 도서, 주제별 신간 도서 등을 전시하고, 블라인드 북 대출하기까지 진행 중이다.
기증 받은 공중전화 박스는 도서관 직원이 일일이 벗기고 칠해서 '우리동네 공유서가', '서서(書書)볼까', '에너지스테이션'으로 활용 중이다. 에너지 스테이션은 태양광을 이용한 에너지 충전소다. 로비와 서가 곳곳에 직원들의 노력과 땀이 배어 있다.
11월부터 블라인드 북을 기획하고 일일이 준비한 신윤선 사서는 평소 우리가 책을 선택하는 기준을 바꾸고, 재미있는 독서 체험이 되도록 방법을 찾았다며, 이용자들에게 기분 좋은 선물 같은 독서 기회가 되길 바란다고 한다. 블라인드 북 안에는 설문지를 넣어놨다. 책을 읽은 소감과 블라인드 북에 대한 의견을 조사해서, 추후에 관련 계획을 세울 때 반영하려고 한다. 수정도서관의 '블라인드 북' 대출하기는 12월까지 진행 예정이다. 이용자들의 반응을 살펴보며 연장할 계획도 있다. 마무리와 시작, 아쉬움과 기대가 교차하는 연말연시. 마음에 채워지지 않는 빈자리가 있다면, 도서관에서 책이나 책 속 한 구절로 그 의미를 찾아보고 조금씩 채워보는 건 어떨지 제안해 본다. 취재 전우선 기자 folojs@hanmail.net 저작권자 ⓒ 비전성남,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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