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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남시민 독서 릴레이 ⑬ 유재신(주부)] 정원가는 흙을 가꾼다

정원에서 찾은 따뜻한 인생 메시지, 『정원가의 열두 달』

  • 비전성남 | 기사입력 2019/12/24 [09:00] | 본문듣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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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원가의 열두 달』
카렐 차페크 지음, 펜연필독약 펴냄    © 비전성남


마음에 우울이 찾아왔을 때 이름도 모르고 들여온, 꽃 잘 피우는 그 아이는 제라늄이었다. 제라늄은 종류만큼이나 빼어난 미모를 자랑하는 아이들이 많았다. 2년 동안 좌충우돌 모으고 키우다 보니 귀하고 비싼 아이들은 대개 약했다. 그때부터 이꽃 저꽃 옮겨 다니며 수정시키고 채종하고 발아시키면서 나만의 특별한 제라늄 만들기를 시도했다.
 
지식은 1도 없이 무모하게 달려들어 가드닝을 시작한 나의 눈에 쏙 들어온 책이 『정원가의 열두 달』이다. 체코의 국민작가 카렐 차페크가 쓰고 그의 형요제프 차페크가 삽화를 그렸다. 각별했던 형제는 나란히 붙은 집에 살면서 함께 오랫동안 정원을 가꿨다.
 
“인간은 손바닥만한 정원이라도 가져야 한다.우리가 무엇을 딛고 있는지 알기 위해선 작은 화단 하나는 가꾸며 살아야 한다. 그러면 친구여 그대는 저 구름들조차 우리 발밑의 흙만큼 변화무쌍하지도 아름답지도 경외할 만하지도않다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제라늄을 심을 흙은 물빠짐이 좋아야 하고 산성도가 높아서는 안 된다. 적당한 양분이 필요하니 분변토나 훈탄 등을 섞어 최적의 상태로 만든다. 조화로운 ‘맛있는 흙’이다. 흙이 맛있다니 제정신이 아니라고 해도 생각을 바꾸지 않겠다. 제라늄을 키우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흙이 중요하기 때문이다.

식물의 삶이 흙에서 비롯된다면, 흙은 식물을 성장시키고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게 하고 씨앗으로 후손을 남긴다는 점에서, 개인도 되고 사회도 되고 국가도 된다.
 
해마다 1월 1일에는 직접 받은 씨앗을 심는다. 4월 중순까지는 모든 것이 평온하다. 뿌리를 갉아 먹는 날파리 유충을 막기 위해 가끔 친환경 살충제를‘칙칙’ 하는 것 외엔 물 마르면 물 주고 햇빛 나면 창틀에 끼워 햇살을 쬐어 주면 된다.
 
위기는 7월 말과 8월. 긴장한다. 습기가 덮치지 않게 더위에 녹아버리지 않게 해야 한다. 일기 예보는 필수. 비 소식이 있으면 물을 굶기고 더울 때는 이른 새벽에 물을 준다. 물을 머금고 더위에 노출되면 뿌리가 썩기 때문이다. 가족들은 작작하라지만, 아이들의 습성을 알고 그들이 가져올 꽃잔치를 알기에 긴장할 수밖에 없다.
 
나의 애정이 언제나 기쁜 결론을 맺는 것은 아니기에 “정원은 언제나 미완의 존재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의 인생살이와 꼭 닮았다”는 카렐 차페크의 말에 공감한다. 무더위를 견딘 아이들은 맛있는 흙을 토닥토닥해 분갈이를 한다. 이제부터는 쫄깃한 심장으로 헌신의 결과를 기다린다.

소복이 자란 잎들을 수시로 헤쳐보며 꽃대가 올라오는지 살핀다. 사진을 찍어 기록하고 외출에서 돌아오면 먼저 베란다로 달려간다. 기다리다 기다리다 애가 타 잊은 듯 냉담해질 때, 예상치 못한 꽃대를 발견한다.
 
이제는 꽃봉오리가 뾰족한지 동그란지 수시로 쳐다본다. 가슴은 두근두근! 대부분 꽃잎이 5장이면 홑꽃, 5장 이상이면 겹꽃이라 하는데 겹꽃은 만들기가 쉽지 않다.
 
마침내 통통하게 여문 꽃봉오리가 열린다. 맙소사! 무릎을 꿇고 만다. 기대와는 다른 흔하디흔한 길거리 화분의 소복한 꽃으로 피었다. 올해 ‘파종이’중 아직 꽃을 보지 못한 아이들이 서른여 개, 겹꽃은 더디게 꽃을 피운다는 고수님들의 조언을 철썩같이 믿으며 흐뭇하게 기다린다.

카렐 차페크의 말처럼 제라늄의 작은 씨앗 안에는 ‘건축설계도’가 들어 있을 것이다. 나는 그 설계도가 그대로 발현되도록 돕는 가드너일 뿐이다.
 
성남시민 독서릴레이 2월 주자는 수(數)와 인연을 맺은 황찬욱 선생님! 그의 인생 정원에는 무엇이 자라고 있는지 궁금하다.

기고 유재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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① 은수미 성남시장 『건지 감자껍질파이 북클럽』
→ ② 노희지 보육교사 『언어의 온도』
→ ③ 일하는학교 『배를 엮다』
→ ④ 이성실 사회복지사 『당신이 옳다』
→ ⑤ 그림책NORi 이지은 대표 『나의 엄마』, 『어린이』
→ ⑥ 공동육아 어린이집 ‘세발까마귀’ 안성일 선생님『풀들의 전략』
→ ⑦ 구지현 만화가 『날마다 도서관을 상상해』
→ ⑧ 이무영 영화감독 『더 로드(The Road)』
→ ⑨ 김의경 소설가 『감정노동』
→ ⑩ ‘비북스’ 김성대 대표 『단순한 진심』
→ ⑪ 스토리텔링 포토그래퍼 김윤환 『포노 사피엔스』
→ ⑫ 김현순(구미동) 『샘에게 보내는 편지』
→ ⑬ 주부 유재신 님 『정원가의 열두 달』
→ ⑭ 황찬욱 선생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