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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서각 산책] AI시대와 인간의 정체성에 대한 반성

  • 비전성남 | 기사입력 2020/02/24 [12:42] | 본문듣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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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삶은 인류의 지적 성찰이 확장되는 과정과 함께 지혜의 눈도 점점 더 밝아지는 역사를 지내왔다. 과학과 기술의 눈부신 발전, 특히 AI(인공지능)를 앞세운 4차산업혁명 시대가 도래하면서, 앞으로 얼마나 더 높고 깊은 문명의 상태로 나아갈지 예측하기 힘든 전환기의 길목에 있다.

드론(drone)이란 소형 무선비행체가 수만 리 떨어진 지역에 숨어 있는 적을 찾아내 살해하는 현장을 우리는 마치 영화 감상하듯이 볼 수 있다. 바둑천재 이세돌 9단을 바둑 대국에서 이기는 AI 알파고는 물질적 기계지만 사람보다 더 뛰어난 지능을 발휘하고 있다. 두려움이 생길 수 있는 순간이다.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세상의 모든 현장에서 인습(因襲)에 길들여진 삶의 일상성이 깨지고, 인류는 새로운 변화의 물결로 쓸려 간다. 가정은 부모의 자애와 자녀의 효도가 조화로이 넘실대는 따뜻한 보금자리로서의 의미가 퇴색돼 가고 있다. 학교는 더이상 훌륭한 인품을 지닌 스승이 솔선수범의 지혜를 전수하는 인격도야의 장소가 아니다.
사회는 첨예한 이익의 대립과 갈등이 난무하는 물질적욕망의 전장(戰場)으로 변모한 지 오래다. 더구나 현재는 인간의 내적 존엄성이 외적 사물의 물질성과 혼효(混淆)돼 정체성 위기가 증폭하는 미증유의 시대로 진입하고 있다.
이렇듯 현란한 문명의 발전 속도에 우리의 정신은 쉽게 적응하지 못하고, 현기증과 두려움을 느낄 수 있다.두려움에 흔들리는 어떤 사람들은 교회나 절로 달려가 위안과 격려를 얻으려 하고, 또 사람들은 지적 성찰의도상(途上)에서 바른길을 찾고자 분투한다.
주지하듯이 삼강오륜이 근본 원리로 작용하는 전통시대의 가족 구조는 해체된 핵가족(核家族) 또는 일인(一人)가구 시대에 적합한 기능을 발휘할 수 없다.
또 일정한 공간에 배열된 획일적 모양의 책상에 질서정연하게 수십 명이 앉아서 산업현장 노동자로 일할 수있는 기초소양을 학습하던 근대의 학교 전통에서도 우리는 새로운 시대를 살아갈 수 있는 삶의 지혜를 배울수 없었다.

앞으로 나아갈 길이 막막할 때는 잠시 마음을 차분히 가라앉히고, 뒤를 돌아보는 것이 지혜다. 전통적으로 옛 선비들이 경계하던 여러 원칙 중 견황비창(牽黃臂蒼)이란 말이 있다. 누런 사냥개를 끌고 팔뚝에는 푸른매를 앉힌 채로 들짐승을 잡으려 들판을 달리듯이, 욕망과 이익을 좇아서 날뛰다가 인의예지신(仁義禮智信)과 같은 참다운 가치를 잃어버리지 말라는 마음의 다짐이다.
세상의 물결이 거세질수록 마음의 물결은 고요하고,욕망의 파도가 높아질수록 자아의 실상은 왜곡된다. 세상이 물질적 욕망의 폭주에 따라 비인간적 물화(物化)의 길로 치닫고 있지만, 바로 이 풍랑 속에서 우리는 인간의 본질과 의미에 대해 사색해야만 한다.
오직 자신의 본질 또는 정체성에 대한 진지한 반성과 사색을 통해서 자기 자신의 마음속에 고요한 평화를 이룰 수 있다. 물질과 비물질의 구분이 모호해지는 AI시대에는 마음의 평화를 추구하는 단계에서 더 나아가 심층적으로 세계와 우주의 실상(實相)을 관조하는 근본적 사유(radical meditation)가 더욱 필요한 시대가 됐다.

우주론적 시각에서 보면 본래 우주는 생성의 순간에서부터 소멸, 그리고 새로운 생성의 반복을 이루는 과정에서 물질과 비물질 또는 생사(生死)의 구별은 없다.그렇기에 우리는 사는 동안 생과 사도 근본적 구별이 없다는 깨우침을 끊임없이 떠올린다면 미래에 대한 두려움도 조금씩 극복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