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동의 쪽지 한 장
장영환 분당구 서현동 직장을 그만두고 집에서 몇 달간 쉬게 됐다. 다른 직장을 알아보는 동안 무작정 놀 수가 없어서 우선 급한 대로 우유배달을 시작했다. 건강도 챙기고 용돈도 벌 요량으로 우유배달에 나선 것이다. 얼마 전 비가 조금 내리던 날 아침이었다. 궂은날 괜스레 우유가 늦거나 실수라도 하면 느닷없이 ‘우유 넣지 마세요’라고 할까 봐 늘 노심초사다. ‘오늘은 그런 말 듣지 말아야지’ 싶어서 서둘러 나선 길. 가가호호 정신없이 우유 투입에 몰두하다 보니 비 내리는 눅눅한 날씨 덕분에 등에 땀이 흥건하다. 일을 시작한 지 1시간 30분, 마지막 아파트 한 라인만 남았다. 그런데 그날따라 엘리베이터가 고장났다. 스위치를 누르는 곳에는 ‘고장, 곧 수리조치하겠습니다. 관리실’이라는 안내문이 붙어 있었다. 아, 2호 라인 딱 한 집인데 하필 그집이 무려 19층이다. 별수 없이 아파트 등반길에 올라야 한다. ‘이게 웬 팔자란 말이냐’ 싶어 한숨을 푹푹 쉬며 우유 2통을 들고 계단을 막 올라서려는데 출입문 바로 옆에 볼펜으로 급히 쓴 듯한 커다란 종이 한 장이 눈에 들어왔다. ‘우유 아줌마, 엘리베이터 고장이람당ㅠㅠ. 힘든데 올라오시지 마시고 우편함에 넣어두고 가세요. 1902호’ 그 집 아이들 글씨인 듯했다. 우유 돌리는 사람이 남자인 줄 모르고 아줌마라고 했다. 감동 또 감동이다. 19층까지 엘리베이터 없이 걸어 올라갈 우유 배달부를 생각해 크게 배려해 준 조그만 글씨. 정말 눈물이 날 지경이었다. 이렇게 고마울 데가. 우유를 우편함에 넣으려다 멈칫, 이런 고마운 분들께는 성심으로 보답해야 한다는 마음이 불끈 솟았다. 이렇게 고마운 고객에게 미지근한 우유를 드시게 할 수는 없는 노릇. 나는 너무 기분이 좋아 단숨에 19층을 등정해 우유를 넣어드렸다. 임무 완수! 이 아침 덕분에 온종일 기분 좋고 아름다운 하루. 그런 이웃들과 함께 성남이라는 같은 하늘을 이고 같은 땅을 밟고 사는 게 행복하다. *독자 수필과 추천도서(원고지 5매 내외, A4 ½장 내외), 사진(성남지역 풍경, 사람들-200만 화소 이상)을 모집합니다. 2020년 4월 10일(금)까지 보내주세요(주소, 연락처 기재).채택된 작품은 소정의 원고료를 드립니다. 보내실 곳 <비전성남> 편집실 전화 031-729-2076~8 이메일 sn997@korea.kr 저작권자 ⓒ 비전성남,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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