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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대석/ 성남의 중요무형문화재 2

  • 관리자 | 기사입력 2010/03/25 [16:00] | 본문듣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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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19호 금박장 김덕환 장인

5대째 가업을 잇는 장인 가족
300여종의 다양한 옛 금판 보유…
새로운 문양과 디자인 끊임없이 연구

김덕환(75·중요무형문화재 제119호) 금박장 가족은 5대째 금박 일을 하고 있는 장인 가족이다. 5대에 걸쳐 가업을 이어가고 있다는 것은 아주 작은 역사지만 김덕환 금박장 가족의 인생에서는 거대한 강물이었고, 포기할 수
없는 꿈이었고, 그래서 아름다운 장인들의 삶이 되고 있다.

“증조부 김완형 할아버지는 철종조에 궁궐에 물품을 조달하는 일을 하고 계셨지요. 교통이 발달하지 못해 금의 조달에 어려움을 겪었던 그 시절, 금빛 나는 임금의 예복을 행사 일에 맞춰 올리기 위해 증조할아버지께선 직접
금박을 시작하셨고, 증조부의 금박은 대를 이어 김원순 조부, 김경용 아버지 그리고 4대인 제 뒤를 이어 지금은 아들이 5대째 가업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김덕환(분당구 정자동) 금박장은 가끔은 금박 일을 배워보겠다고 찾아오는 사람도 있긴 하지만 장인정신으로 우리 것을 지키겠다는 마음보다는 돈벌이 수단으로만 여기기 때문에 버티지 못하고 떠난다면서 현재 부인 이정자(69)씨와 아들 김기호(43), 며느리 박수영(43) 씨가 이수자로 금박 일을 돕고 있다고 덧붙였다.

금박이란 일반적으로 금 덩어리를 극히 얇게 두드려서 편 것을 말하는데, 우리나라의 경우는 접착제를 이용해 대상물에 금박을 붙히는 기술도 금박이라고 한다. 금박 작업 공정은 무늬 도안하기, 금판 조각하기, 금박지 만들기, 풀 만들기, 무늬찍기, 두드리기, 건조시키기, 뒷손질하기(털기) 등의 모든 공정은 수작업만으로 진행된다.

이수자 김기호 씨는“금박과정 중 가장 중요한 작업은 금박판 조각하기인데 금판나무로는 돌배나무만을 사용한다”고 소개하며“배나무는 단단하면서도 유하기 때문에 가는 선도 잘 살릴 수 있어서”라고 설명했다.

그는 왕실금박장이었던 조부 덕분에 용·봉황·1학·거북 등 동물문과 목단·국화·불로초·사군자(四君子)·석류·연꽃 등 식물문, 구름·해·바위 등 자연문과 수(壽)·복(福)·희(囍) 등 길상어문 등 300여 종의 다양한 옛 금판을 보유하고 있지만 새로운 문양과 디자인 개발은 끊임없이 공부하고 연구해야할 숙제라고 말했다.

조선시대에만 해도 금박은 국가의 대소사가 있을 때 왕가 사람들에 한해 예복에 화려한 금박을 했었다. 이는 의복의 색깔과 금박문양으로 입은 사람의 신분을 나타내게 하기 위함이었고 금박은 세탁도 할 수 없었다. 이 때문에 왕가의 사람들도 평상복에는 금박을 하지 않았다. 그래서 결혼할 때 입었던 금박 원삼은 잘 보관했다가 환갑에 입고, 죽고 나서 수의로 입었다고 한다. 이렇듯 왕가에서만 쓰이던 금박은 조선조 말 일본이 왕실 격하책의 하나로 이를 일반에게 허용함으로써 금박한 옷을 대중이 입게 됐다.

이수자 이정자 씨는“한때는 결혼이나 회갑등의 경사에 금박옷을 입음으로써 한 사람의 인생에서 가장 소중한 날의 격을 한층 높여주기로 했었는데 요즘은 한복을 입는 사람들이 적어 어려움이 많다”고 토로한다. 지난 50여년
전통 한복에 궁실 문양의 금박을 해온 금박장 김덕환 장인.

자신의 작품에는 만족한 적 없지만 선친 작품인 궁궐 현판의 금판박만큼은 늘 자랑스럽게 생각한다는 노(老) 장인은“바람이 있다면 자손들이 의무감을 갖고 대를 이어 금박 일을 해 줬으면 하는 것”이라고 했다. 이에 5대를 이어가고 있는 김기호 씨는“제 아들이 6대를 이어 금박 일을 하고 싶게끔 제 대에서 금박관련 박물관을 짓는 것이 꿈”이라고 말했다.

정경숙 기자 chung0901@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