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 전시 ‘움직이는 땅 : 광주대단지사건’은 성남의 원형인 광주대단지(현 성남시 수정·중원구) 일대에서 일어난 주민 생존권 투쟁의 역사를 모티브로 광주대단지사건 및 그 현장이었던 태평동 빈집, 2110번지를 전시장으로 활용해 미디어 작업으로 구현한 현장 미술전시다.
김호민·장석준·이경희·허수빈 등 4명의 작가는 도시 서민의 애환과 이주의 역사가 그대로 새겨진 수정구 태평동 일원에 빈집으로 남겨진 2110번지 지상 1, 2층 각각의 공간에서 광주대단지사건 및 그 현장이었던 현재 성남 원도심을 관찰하고 해석한 내용을 미디어 매체로 구현했다.
김은영 총괄 기획자는 “선이주 후 개발정책이 고스란히 남아있는 성남 원도심 특유의 좁고 가파른 골목에 들어찬 스무 평 붉은 벽돌 주택. 다른 한편에선 대단지 아파트 개발 계획에 따라 서민들의 이주가 반복된다"며 "1960년대, 개발정책에 의해 사람들은 현재의 좁고 가파른 언덕 위 스무 평 붉은 벽돌 주택의 주인이 돼 있다. 또한 사람들은 계속되는 개발정책에 따라 또 다른 땅을 찾아 움직인다”고 말했다.
이어 “성남의 선주민인 광주대단지 이주민들의 주체적 기억과 사회적 집단 기억의 심층으로부터 추출된 삶과 시공간의 의미를 되돌아보고 광주대단지사건이 갖는 장소적 가치를 예술가의 관점으로 재조명해보고자 ‘움직이는 땅, 광주대단지사건’ 미디어 전시를 마련했다”고 전했다.
은수미 성남시장은 전시회 관람을 마친 후 “빈집을 시민들과 함께하는 문화 전시공간으로 활용하는 것이 뜻깊다”며 “앞으로 빈집을 일회성이 아닌 시민들이 역사를 알아갈 수 있는 연속적인 문화 전시공간으로 활용하도록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빈집을 활용한 미디어 전시, '움직이는 땅 : 광주대단지사건’
김호민_환영 약진 광주대단지
김호민 작가는 광주대단지사건의 폭력 시위 주도자로 몰려 재판을 받았던 당시의 주민과 권력자들의 모습을 모티브로 모순적 국가권력에 의한 강제이주, 지켜지지 않는 공약, 분노할 수밖에 없었던 역사적 현실을 빛과 어둠, 계층 간 대비로 묘사했다.
LED 전구를 배면에 설치한 한지(장지)를 송곳으로 타공해 빛을 발생시키는 작업은 현상과 진실의 양면성을 드러내고 서로 마주보는 전시장 배치를 통해 광주대단지의 시대상과 명암을 극명하게 보여준다.
수묵 형식의 역사적 인물 풍경은 생존 위협에 분노하는 입주민들의 모습과 정치적 권력자들의 모순된 모습을 겹치게 한다. ‘사람 10만이 모이면 서로 뜯어 먹으며 자립하고 생존한다’는 식의 발상으로 대규모 집단이주를 단행했던 광주대단지의 가려진 역사를 조명했다.
장석준_모든 것들 위에 땅(광주대단지사건 아카이브/영상설치/프로젝터, 고보조명)
땅 없는 삶을 살아가던 이들이 만난 대지는 느리고 제멋대로였으며 축축하고 파괴적이었다. 이곳은 더 나은 도시를 쫓아 떠나는 황무지 위에 기록된 삶의 굴레를 기억하는 곳이다. 질서와 혼돈, 문명적인 것과 야만적인 것을 모두 흡수한 파괴적인 도시의 생존기가 쓰여 있는 터다.
어쩌면 가장 소박한 도시를 동경했을 소외된 인간들의 절박한 이야기, 도시 문명에 가려진 찢기고 퇴적된 성남-광주의 땅의 기억을 더듬어본다. 오늘도 우리는 붙잡을 수 없는 미래의 도시를 꿈꾸며 이 모든 삶의 현존 위에 부유하는 터, 한 뼘 땅을 소유하기 위해 치열한 전쟁을 반복 중이다.
모든 것들 위에 땅_한 뼘 터_광주대단지(ver 증강현실_AR) 성남에 떠 있는 땅_나대지
도시로부터 유예된 땅 ‘나대지’는 도시의 원형이자, 도시의 생성과 소멸이 교차하는 시공의 층이다. 나대지 현장을 3D 매체로 스캐닝해 표피가 된 땅의 파편들을 대면하는 경험을 전달한다.
현실과 가상을 중첩하는 AR 증강현실기술을 통해 성남을 비롯한 여러 건설지 현장에서 모인 나대지 파편들은 이곳(더 이상 무언가를 지을 수 없는) 위에 무위의 층으로 펼쳐진다.
관람자는 장치(스마트폰)를 이용해 직접 땅을 덮고 쌓는 허공의 대지 개발에 참여하면서 각각의 지층을 생성한다.
이경희_성남 땅(120×120cm, 태평4동 빈집 내 설치, 2020)
인간이 머물던 공간(집)의 껍질, 즉 공간이 가진 물리적 구조와 건축적 껍질 안에 존재해온 ‘점유’의 주체와 형태에 주목한다. 즉 태평동 빈집 내부 바닥에 일정한 구멍을 시간을 두고 파 내려감으로써 건축 공간이 형성돼 온 물리적 퇴적층, 시간의 질서를 되짚음으로써 건축 공간과 시간의 구조를 드러내고 그곳을 점유했던 인간의 삶을 추적한다.
삶의 필요에 의해 표면을 형성해온 사물의 단층은 공간이 간직한 역사의 퇴적물이자 생성의 층위들이 서로 교차하고 분리되면서 발생시키는 의미의 흔적이다.
작가는 전시기간 동안 ‘땅파기’라는 행위를 통해 과거 특정 시점을 점유하고 정주했던 사람들에 의해 축적된 레이어를 드러낸다. 인위적으로 고립시킨 공간의 노출을 통해 시대와 지역성의 변화에 적응, 혹은 부적응해 온 주민의 삶과 고립감, 나아가 이를 관통하는 연장선 속에서 보다 다양한 점유의 형식, 무한 반복되는 삶과 죽음의 근원적인 형식을 사유한다.
허수빈_목격(가변크기, 목재망루, 썬팅 된 창문, 축소모형)
성남 원도심과 연관된 건축적 풍경을 미니어처와 몇 가지 시공간이 중첩된 형식으로 빈집의 방에 구성하고 그것을 감상자가 방문 밖에서 들여다보도록 했다. 그는 광주대단지사건 이후 끝나지 않는 강제이주, 재생과 재개발 사이에서 혼란을 겪고 있는 지역의 현안에 주목했다.
어둑한 조명에 의해 현실감 있게 조성된 마을의 풍경은 빛과 어둠이 발현하는 특유의 집중감과 친숙한 경험으로 마치 관람자 자신의 일상을 들여다보는 듯한 환영으로 다가온다.
작품 속에서 설정된 시공간은 지극히 개인적이면서도 일상적인 작가의 자기 고백에 가깝다. 관객의 감정이입과 거리 두기 사이의 모호한 망설임 속에 투영된다.
섬세한 조명과 설치를 근간으로 하는 작품 속 내밀한 정서가 지극히 자연스럽게 공유되는 생명력은 실제처럼 보이게 하는 리얼리티의 구현을 위한 기술력이 아니라 관람자가 그 모호한 정서 속으로 자연스럽게 이입되게 만드는 감상적 힘에 의해 발생한다.
취재 윤해인 기자 yoonh1107@hanmail.net
움직이는 땅 광주대단지사건 관람 안내 전시기간 : 8월 1~14일 관람시간 : 오전 10시~오후 6시 전시장소 : 성남시 수정구 태평동 2110번지 '움직이는 땅 : 광주대단지사건'은 작가의 작업 모습 등 전시의 모든 과정을 담은 영상을 성남문화재단 유튜브로 관람할 수 있다. 저작권자 ⓒ 비전성남,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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