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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개발을 앞둔 상대원2동, 가파른 언덕 위서 동네를 살피는 ‘대화세탁소'

[추억을 소환하다]

  • 비전성남 | 기사입력 2020/10/22 [17:10] | 본문듣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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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상대원 2동에 위치한 대화세탁소 전경   © 비전성남

 

▲ 35년 전 개업식 때 들어온 성냥갑 © 비전성남

 

▲대화세탁소 앞에서 본 상대원시장 풍경     © 비전성남

 
“슬레이트집, 기와집이 허물어지고 3층짜리 단독주택이 하나둘 들어섰다. 질퍽한 흙길이 시멘트로 포장되고, 드디어 세탁소 앞 언덕으로 마을버스가 다니기 시작했다. 순간 가슴이 벅찰 만큼 기분이 좋았다”는 상대원2동 대화세탁소 박문숙(66) 사장.
 
1984년, 대원초등학교 위 언덕에 자리를 잡을 당시엔 상대원시장에서부터 흙길을 걸어서 언덕을 올라야 했다. 흙길이 시멘트 포장길로, 다시 아스팔트 길로 변하면서 이사 올 때는 없던 새 건물들이 하나씩 들어서 자리를 잡았다. 등하교 시간에는 아이들이 무리 지어 오르내렸지만, 지금은 그런 모습은 볼 수 없다. 눈에 익숙하던 문방구도 복덕방도 없어졌다. 재봉틀 돌리며, 다림질하며 바라본 거리 풍경은 이제 예전과 다르다.
 
박문숙 사장은 “손매무새 야무지단 소릴 들으며 19세 때부터 집에서 사람들의 옷을 수선해줬다. 결혼 전에는 의상실을 운영할 정도였다. 타고난 재주랄까, 천직일까. 결혼 전부터 지금까지 재봉틀과 빨랫감을 손에서 놓지 않았다”고 한다.

“현재 장소에 ‘대화세탁소’란 이름을 걸고 세탁업을 시작한 건 35년 전 일”이라며 박 사장이 그동안의 시간을 풀어놓았다. 세탁소 안은 기계 세탁기에서 컴퓨터 세탁기로 기계만 바뀌었을 뿐 지난 시간의 흔적이 그대로 남아 있다. 개업할 때부터 사용하고 있다는 재봉틀은 여전히 제 일을 하고 있고 수선용 가위와 반짇고리도 여전하다. 불처럼 활활 타올라 번창하라고 개업식 때 누군가 사 들고 온 성냥갑도 가게 한쪽에 놓여있다.
 

▲ 빼곡한 실패들    © 비전성남

 

▲ 35년의 시간을 풀어놓는 박문숙 사장(오른쪽)    © 비전성남

 
세탁소 천장 옷걸이에 겨울옷들이 비닐에 싸여 걸려있다. 20평 분양지로 이뤄진 마을의 특성상 집이 협소하다 보니 겨울옷은 세탁소에 세탁을 맡긴 후 보관했다가 다음해 겨울에 찾아가는 사람들이 많다. 이웃의 상황을 고려해 가게에 두꺼운 옷을 보관해 주는게 오래된 세탁소만의 인심이다.

대화세탁소는 세탁과 수선만 하는 곳이 아니었다. 통장으로 일하던 박 사장은 동네 어려운 처지의 이웃을 위해 앞장서는 것도 마다하지 않았다. 조부모 가정아이들, 병원비가 모자란 이웃에게도 박 사장의 마음이 닿았다.

세탁소 바깥 풍경은 70~80년대를 그린 영화 속 풍경과 비슷하다. 세탁소 앞에 세탁이 끝난 옷들이 바람에 마르고 있다. 세탁소 창에 쓰인 문구도 예스럽다. 영화 속에서 종종 보던, 세탁소 옷을 빌려 가던 사람은 없었을까? 영화 속 이야기만은 아닌 듯, 옷을 빌리러 온 사람은 있었지만 손님이 맡긴 옷을 빌려줄 수는 없었다고 한다.

옷을 아껴 늘리고 줄여 입던 시절은 지났다. 지금은 싸게 사서 한두 해 입고 버리는 사람이 많다. 인구 감소와 프랜차이즈 세탁전문점, 셀프세탁방의 등장은 일반세탁소의 불황으로 이어졌다.
 
“세탁소가 문을 열었을 때부터 지금까지 오는 분이 계세요. 0.3~0.5cm의 길이에도 민감한 분이 계시는데 저를 믿고 찾아 주시는 분들이 계셔서 감사하죠. 깨끗하게, 반듯하게 세탁해서 돌려드린다는 게 보람있고 좋아요.”

상대원2동은 재개발사업으로 곧 이주가 시작된다. 같은 길을 걷던 주민들이 하나둘 이사를 가 주민 수가 많이 줄었다. 일감이 줄었지만 사는 동안에는 세탁일을 놓지 않을 생각이다.
 
취재 윤해인 기자 yoonh1107@naver.com
취재 박인경 기자 ikpark9420@hanmail.net

*이 지면은 재개발로 사라져가는 성남의 모습을 시민과 함께 추억하기 위해 만들어졌습니다. 주변에 30년 이상 오래된 이색가게, 선한 영향력을 끼치는 착한가게, 장인 등이 있으면 비전성남 편집실로 알려 주시기 바랍니다. 전화 031-729-2076~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