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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마당 essay] 봇들공원에서의 안식년

지선향 분당구 삼평동

  • 비전성남 | 기사입력 2020/10/22 [17:19] | 본문듣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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봇들공원에서의 안식년
지선향 분당구 삼평동
 
2020년을 맞기 전부터 공공연하게 ‘나의 2020년은 안식년’이란 말을 했다. 큰아이에 이어 작은 아이도 원하는 직장에 출근하게 됐고 정년퇴직을 눈앞에 둔 남편도 여유롭게 직장을 다니고, 내 주변의 크고 작은 일들이 거의 정리가 돼 나의 일상에도 쉼표가 필요하다고 느꼈기 때문이다.

중년에 접어들면서 나날이 두둑해지는 뱃살과 성인병 위험 때문에 피트니스에 등록하고 라인댄스를 하고 싶었다. 노안이 오기 전에 책을 쌓아놓고 맘껏 읽고 취미로 그리던 그림을 공모전에 출품해 작품을 평가받고 싶은 계획도 있었다.

예기치 않게 코로나19로 집에 있는 시간이 길어졌다. 피트니스와 화실은 언제 열지 모르고 내가 사는 아파트에 코로나 확진자가 발생했다는 문자를 보고 더욱더 집에 머무는 시간이 많아졌다. 문득, 야심 차게 계획했던 나의 안식년이 이대로 끝날 것 같다는 절박한 생각이 들어서 텀블러 하나 달랑 들고 아파트 뒤 봇들공원을 산책하기로 했다. 공원에는 학교에 가지 못하는 초등학생과 가족, 동네 친구인 주부들, 테크노밸리에 근무 중인 회사원들이 도란도란 짝을 지어 산책 겸 운동을 하고 있었다. 몸이 불편한 어르신도 지팡이를 짚고 재활을 위해 힘겨운 산책을 하고 있었다.

아파트 뒤쪽에 이렇게 근사하고 멋진 산책로가 있음에도 차를 타고 멀리 떠나는 여행만을 꿈꿨다는 게 살짝 부끄러웠다. 아침에 가족이 모두 출근하면 나는 텀블러를 들고 봇들공원에 오른다. 계단을 하나씩 오르다보면 까치와 다람쥐가 나뭇가지 사이를 뛰어다니고 운이 좋으면 고라니도 만날 수 있다. 공원 곳곳의 운동 시설에서 가벼운 근력운동을 하고 계단을 내려오면 1시간 남짓, 땀이 흐르고 숨이 턱까지 차오른다. 더이상 코로나를 탓하지 않고, 탁 트이고 맑은 공기와 나무의 푸르름을 느낄 수 있는 봇들공원 산책으로 나의 하루를 시작하게 됐다.

어느 초등학생의 시구처럼 ‘공기 마시는 거 공짜, 꽃향기 맡는 거 공짜, 하늘 보는 거 공짜, 바람 소리 듣는 거 공짜, 미소 짓는 거 공짜’. 봇들공원에 오면 마법처럼 모든 게 행복하고 즐거운 공짜가 된다.
 
 
*독자 수필과 추천도서(원고지 5매 내외, A4 ½장 내외), 사진(성남지역 풍경, 사람들-200만 화소 이상)을 모집합니다. 2020년 11월 6일(금)까지 보내주세요(주소, 연락처 기재). 채택된 작품은 소정의 원고료를 드립니다.
보내실 곳 <비전성남> 편집실 전화 031-729-2076~8 이메일 sn997@korea.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