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창시절서 빠질 수 없는 그곳, 44년 역사 '제일마크사'
[추억을 소환하다] 도시환경 정비사업 추진 중인 중앙동
▲ 한자 이름을 수놓고 있는 정용삼 사장 © 비전성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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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수를 놓는 컴퓨터 기계가 바쁘게 돌아간다. 내년 신입생 명찰의 바탕을 수놓는 작업 중이다. “자~ 어떤 걸 보여드릴까요?” ‘제일마크사’ 정용삼(63) 사장이 자수용 미싱 앞에 앉았다. 그의 손끝에선 붉은 장미꽃 한 송이가 마술처럼 피어난다. 신기해하고 있는 틈에 동래 鄭, 얼굴 容, 석 三이라고, 정 사장의 한자 이름이 순식간에 써진다.
“글씨체가 예뻐야 자수체도 예쁘게 나와요. 또 기본적으로 자수글씨는 붓글씨체를 사용하기 때문에 서예를 할 줄 알아야 하고,옛날 명찰은 한자 이름을 사용했기 때문에 한문도 많이 알아야합니다”라고 말하는 정용삼 사장은 다행히 글씨체도 예쁘고 어렸을 때 아버지로부터 한문과 서예를 배우며 성장했다.
▲ 컴퓨터 자수기로 명찰 바탕 작업 중 © 비전성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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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박자를 다 갖춘 정용삼 사장이 자수를 시작한 건 열일곱 살때부터다. 고향인 충북 보은에서 인문계 고등학교 진학을 위해 서울로 올라왔는데 진학을 위한 공부는 잠깐, 우연찮은 계기로 자수에 입문했다. 자수는 80년대 초반, 유행하던 직업군 중 하나였다. 한복, 양장 패션 등에 사용되는 자수를 가르치는 학원 또한 성행했다. 지금은 컴퓨터 자수 기계가 다 알아서 하다 보니 학원은 사라졌고, 자수만 전문으로 하는 곳은 성남에서 제일마크사가 유일하다.
중원구 중앙동, 종합시장 맞은편에 제일마크사가 차려진 건 약 44년 전 일이다. 앞으로 흐르는 단대천에서 걸레를 빨아 가게를 청소하던 시절이었다. 개천가를 수놓던 포장마차, 화려했던 종합시장, 이곳 모르면 성남사람이 아니라고 할 정도로 유명했다는 빵집 ‘만복당’…. 2층, 열려진 창을 통해 수십 년, 성남의 역사를 지켜보며 살았다. 봄에는 학생들 명찰 만들기에 바빴고, 근처에 제1공단이 있었으니 가을엔 직장인들 단체복에 회사 마크 새기기에 바빴다.
“성남에서 중·고등학교를 다닌 사람 중 제일마크사를 안 다녀간 사람은 별로 없을 것이다. 학생 수가 많던 시절, 교복에 이름표를 달려면 100미터 남짓 줄 서 기다려야 했다”며 “현재도 입학시즌엔 바쁘지만 학생 수가 적어지다 보니 바쁜 건 잠깐이다”라고 한다.
방석 수, 한복 수, 꽃 수, 양장 수, 글씨 수까지 단계별 배움의 과정에서, 44년 마크사를 운영하는 동안 미싱 바늘에 손가락 다치는 것은 일상처럼 흔한 일이었다. “이제는 손가락 다치는 것 쯤이야 대수롭지도 않다. 컴퓨터 기계 보급이란 이유도 있지만, 미싱 바늘에 손을 다친다는 위험 때문에 미싱 자수를 배우려는 사람이 없다는 게 아쉽다. 자수 솜씨를 누군가에게 물려주고 싶지만 이어갈 사람을 찾기가 어렵다는 것 또한 아쉬움”이라고 말한다.
제일마크사가 위치한 중앙동은 도시환경정비사업을 추진 중이라 이주가 시작되면 이곳은 문을 닫아야 한다. 고향으로 내려갈 계획이었지만 지인들의 만류로 자리를 옮겨 당분간은 명맥을 이어갈 계획이다. 더 나아가 가방, 의류, 낡은 옷 등 각종 패션에 자신만이 표현할 수 있는 자수의 예술성을 살려내고 싶은 게 정사장의 꿈이자 바람이다. 그 꿈이 실현되길 바란다.
취재 윤해인 기자 yoonh1107@naver.com
취재 박인경 기자 ikpark9420@hanmail.net
▲ 정용삼 사장이 미싱 자수로 장미꽃을 수놓고 있다. © 비전성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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