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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남시민 독서릴레이 24 김현성 가수 겸 작가] 아름다움을 향한 동경, 벨 에포크

메리 매콜리프 『벨 에포크, 아름다운 시대(Dawn of the Belle Epoque)』

  • 비전성남 | 기사입력 2020/11/24 [11:49] | 본문듣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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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메리 매콜리프 지음,현암사 펴냄     © 비전성남

 
어느 시대보다 오랜 시간 동안 많은 대중의 사랑을 받고 있는 예술가들이 있다. 화가 마네, 모네, 드가, 르느와르, 세잔, 고흐, 조각가 로댕, 소설가 에밀 졸라, 그리고 음악가 드뷔시 등. 큰 흐름에서 인상주의 예술에 속하는 이들은 모두 동시대 파리에서 활동하며 각자의 언어로 이전까지 세상에 존재하지 않았던 새로운 예술 작품을 세상에 내놓았다. 
 
바로 이 시대, 프랑스 파리가 서구 문화의 중심지로 부상하고 근대에서 현대로 이어지는 예술사의 전환이 일어났던 19세기 말부터 1차 세계대전이 일어난 1917년 이전까지를 우리는 ‘벨 에포크, 아름다운 시대(La Belle époque)’라고 부른다.

그 시대는 이름처럼 그렇게 ‘아름다운 시대’였을까? 19세기 후반의 유럽은 자본주의 체제가 세계의 전면에 등장하고 정치 권력의 구조가 전환되는 불안정한 시기였다. 체제 변화에 따른 계층 간 갈등, 세대 갈등이 심화됐고 특히 파리는 정부군과 시민군의 내전으로 심각한 내홍을 겪고 있었다.

책의 저자인 역사학자 메리 매콜리프는 유서 깊은 대도시 파리의 역사에 깊은 상처를 남긴1870년 내전으로부터 이야기를 시작한다.
 
벨 에포크를 주제로 한 여타의 저작들이 이 시대를 예술적 낭만과 사상적 자유의 표상으로, 일종의 판타지로 다룬다면 저자는 에밀 졸라의 소설이 그렇듯 19세기 말 파리의 시대상을 사실 그대로 보여준다. 갈등과 투쟁의 연속이었던 정치 상황, 구체제의 관습과 가치관이 젊은 세대를 억누르던 시대에 예술가들의 삶으로 우리를 안내한다.

그래서 이 책은 예술가들뿐만 아니라 주요 정치가와 사회운동가, 사업가의 이야기까지도 비중 있게 다루고 있다. 이러한 접근이 우리의 환상을 깨버리지는 않을까? 우리가 듣고 싶은 이야기는 이 작품들이 얼마나 탁월한지, 예술가들이 어떤 천재적인 재능을 지녔는지, 하는 부분이지 않은가?

하지만 이런 접근이야말로 이 책의 진짜 미덕이다. 우리가 인상주의에 대한 미술 서적들을 읽고, 매년 열리는 인상주의 전시에서 유명 작가들의 작품을 감상하면서도 어쩐지 작품의 본래 의미와 가치에 다가가지 못하고 있다고 느낀다면, 그 이유는 예술적 심미안의 부족보다는 당대 사회에 대한 이해, 이 예술의 시대적 소명이 무엇인지 모르는 탓일 가능성이 크다.
 
정치와 사회사를 아우르는 큰 흐름과 그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의 열망을 알지 못한다면 우리는 작품의 형식과 외피만을 보게 될 뿐이다. 예술을 감상한다는 것은 한 시대를 살아간 인간의 꿈과 재능, 의지와 마주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저자는 방대한 역사적 지식을 바탕으로 주요 인물들의 일화들을 의식의 흐름 기법처럼 스토리텔링 한다. 우리는 장편 드라마를 보듯 인물들의 삶의 경로를 따라가면 된다. 이 책에는 그림이나 삽화가 전혀 실려 있지 않다.
 
저자는 시대를 묘사하고 사건들을 들려주는 데 집중한다. 그 효과로 우리는 예술가들의 현실에 보다 가깝게 다가가게 된다. 수십 년에 걸친 삶의 행로를 살펴보며 이들이 무엇을 이루려 했고, 어떤 희생을 치렀으며, 무엇을 성취해 냈는지 보다 선명하게 이해하게 된다.

그들의 삶을 이해하면 작품도 다르게 보인다. 인상주의 예술의 창조자들은 오랜 세월 동안 세상의 조롱과 멸시를 받았다. 왕립 아카데미가 주최하는 국전에는 매번 초대받지 못했고, 작가로서 생계가 걸린 살롱전(공모전)에도 거듭 낙선했다. 여전히 고전주의적 예술이 숭배됐고 작품에는 진지한 주제 의식과 엄숙함이 요청됐다.
 
이처럼 권위적인 시대에 인상주의 예술가들의 작품은 비주류 아웃사이더들의 일탈 정도로 여겨졌다. 이러한 몰이해는 단기간에 극복되지 않았다. 화가들은 돈을 모아 자비로 전시회를 열었고, 그렇게 열린 전시는 대체로 흥행에 참패했다.

그사이 젊은 예술가들은 중년이 됐고 세상도 조금씩 바뀌어 갔다. 모네는 쉰 살이 돼서야 최고 예술가에게 주어지는 레종 도뇌르 훈장을 받았다. 그는 기뻐하면서도 “잃어버린 20년을 보상하기에는 너무 늦었습니다”라고 말했다.
 
벨 에포크 시대의 예술에서 우리는 젊은 작가들의 열정과 고뇌, 창조의 기쁨과 좌절을 마주한다. 작품에 녹아든 삶의 페이소스야말로 오늘날까지 이 작품들이 많은 사랑을 받는 이유가 아닐까?

메리 매콜리프는 벨 에포크 시대에 파리로 모여든 예술가들을 세 권으로 그려냈다. 지금 소개하는 책은 그 1권이다. 영어 원제는 ‘벨 에포크의 여명(Dawn of the Belle Epoque)’이다. 1권을 읽고 나면 자연스럽게 다음 책으로 손이 갈 것이다. 서양미술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인상주의 예술을 알고 이해하고 싶다면 어떤 책보다 먼저 읽어보길 권한다.
 


2021년 성남시민 독서릴레이는 ‘책과 사람이 만나 새로운 이야기를 만드는 공간’을 찾아갑니다. 독자 여러분의 많은 관심과 응원을 기다리겠습니다.


 
 
성남시민 독서 릴레이는 시민과 시민이 책으로 소통하는 공간입니다
① 은수미 성남시장 『건지 감자껍질파이 북클럽』
② 노희지 보육교사 『언어의 온도』
③ 일하는학교 『배를 엮다』
④ 이성실 사회복지사 『당신이 옳다』
⑤ 그림책NORi 이지은 대표 『나의 엄마』, 『어린이』
⑥ 공동육아 어린이집 ‘세발까마귀’ 안성일 선생님『풀들의 전략』
⑦ 구지현 만화가 『날마다 도서관을 상상해』
⑧ 이무영 영화감독 『더 로드(The Road)』
⑨ 김의경 소설가 『감정노동』
⑩ ‘비북스’ 김성대 대표 『단순한 진심』
⑪ 스토리텔링 포토그래퍼 김윤환『포노 사피엔스』
⑫ 김현순(구미동) 『샘에게 보내는 편지』
⑬ 주부 유재신 님 『정원가의 열두 달』
⑭ 황찬욱 학원장 『위험한 과학책』
⑮ 한영준 송림고 교장 『라틴어수업』
⑯ 성남교육지원청 이동배 장학사『두려움과 배움은 함께 춤출 수 없다』
⑰ 김혜원 호서대학교 교수 『죽음의 수용소에서』
⑱ 정소영 세계동화작은도서관장 『가재가 노래하는 곳』
⑲ 홍의택 가천대학교 교수 『명묵(明黙)의 건축』
⑳ 김진엽 한국미술평론가협회장『장하석의 과학, 철학을 만나다』
21 서정림 공연연출가 『생각의 지도』
22 최장섭 변호사 『21세기를 위한 21가지 제언』
23 최하은 대학원생 『에드윈 슈나이드먼 박사의 심리부검 인터뷰』
24 김현성 가수․작가 『벨 에포크, 아름다운 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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