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작나무 사이로 떠오르는 둥근달, 밝아오는 새벽. 평온한 풍경 속에 마음이 환해진다. 무리지어 꽃잎에 내려앉으려는 나비들은 절로 미소짓게 한다.
몰아닥친 한파와 불안함을 잊게 만든 곳은 성남시 이매문고 복합문화공간 매화나무두그루에서 열리고 있는 ‘2020 송선례 초대전 <내 마음의 풍경>’이다.
송선례 작가는 66세인 올해 초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다리를 다쳐 입원해 있는 동안 둘째 딸(한국화가 전수민)이 붓과 물감을 가져왔다. 딸이 스케치해 준 해바라기에 색을 채웠다. 딸이 촬영한 동영상을 보니 꽃잎 하나하나 잎사귀 한 장 한 장 채워가는 손길이 참 곱다. 완성한 그림에서도 그 고운 손길이 묻어난다.
이렇게 시작한 그림이 그를 사로잡았고 강원도 화천 딸의 공방에서 그림을 그리는 생활이 시작됐다. 딸은 그림을 그리는 엄마의 일상을 “아침에 눈을 뜨면 어느새 그림을 그리고 계세요. 낮에도 안 보이셔서 찾아보면 그림을 그리고 계시는 거예요. 하루종일 그리세요”라고 전한다. “머언 옛날 그 어느 땐가 나는 한 마리 새가 되어 훨훨 끝없이 날고 싶은 때가 있었어요. 요즘 난 그 새가 되어 하늘을 나는 기분이랍니다. 그림을 그리면 그림 속의 주인공이 된 듯 마냥 행복하여 콧노래를 흥얼거리게 돼요. 즐거운 마음으로 그림을 그리고, 그림이 완성되고 나면 해냈다는 뿌듯함과 성취감을 느껴요! 그러나 그 성취감도 잠시~ 완성된 작품을 보고 있으면 어딘가 한곳이 빈 듯한 아쉬움과 부족함이 보이고, 그림이란 결코 쉽지 않음을 새삼 깨닫고 그릴수록 어렵다는 걸 느끼고 있습니다. 하지만 계속 그릴 겁니다. 왜냐고요? 그림이 주는 행복감을 알아버렸거든요.” - 송선례 작가노트 中
송 작가의 눈길이 닿은 마을 풍경과 일상의 소품은 화폭에서 새로 태어난다. 예스럽고 소박한 고졸미가 마음을 밝힌다. 엄마의 숨은 모습을 본 자녀들은 너무 좋고 벅차고 설렌다. 막내아들은 눈물까지 흘렸다고 한다.
송선례 작가는 학교 다니는 내내 장학금을 받고 전교회장을 맡을 정도로 영민했다. 하고 싶은 것이 많았지만 일찍 결혼을 하고 40년 넘게 시부모님을 모시고 농사짓고 자녀 넷을 키웠다. 자신을 잊은 세월이었다. 17살에 일찍 세상을 떠난 오빠가 그림을 잘 그렸고, 자신도 그림을 그리고 싶기는 했지만 이런 감각과 열정이 숨어있을 줄은 몰랐다.
송선례 작가는 자식 넷의 태몽을 모두 그림으로 그렸다. 이번 전시에는 둘째 딸 전수민 작가의 태몽인 잉어 그림을 전시한다.
15년 넘게 미술지도를 하는 딸 전수민 작가는 “엄마에게 이런 창작력과 열정이 있는 줄 전혀 몰랐어요. 영감이 넘치세요. 일일이 알려드리지 않아도 쉼 없이 앞으로 나아가고 계세요”라고 한다. 웃으며 영재를 발견한 기분이라고 덧붙인다. 송선례 작가는 그림의 길을 열어주고 10월 초 작가의 첫 전시로 모녀전을 연 딸이 고맙다. 송 작가는 그동안 신기했던 딸의 그림도 이제는 고개가 끄덕여진다. 딸 전수민 작가는 자신의 예술 세계가 엄마, 외삼촌과 닿아 있을 줄은 몰랐다. 출간을 계획하고 있는 책에 엄마의 그림을 삽화로 넣고, 엄마와 함께 해외전시도 하려고 한다. 전수민 작가는 접었던 화가의 꿈을 직장생활을 하면서 다시 시작했고, 저소득층 학생 그림지도, 군부대 미술치료, 시각장애인 미술체험 등 다양한 봉사와 기부를 꾸준히 하고 있다.
이제 화가로서 같은 길을 가는 송선례 작가와 전수민 작가. 서로 든든한 버팀목으로 오래 함께하길, 그림으로 또 다른 자신의 세상을 연 송선례 작가가 그림으로 더 행복하길 기원한다. 2020 송선례 초대전 ‘내 마음의 풍경’ ∙ 기간: 12월 19~31일, 매일 12:00~18:00 ∙ 장소: 성남시 분당구 판교로 440(이매동 도도빌딩) B1 이매문고 복합문화공간 ‘매화나무두그루’
취재 전우선 기자 folojs@hanmail.net 저작권자 ⓒ 비전성남,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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