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시당’이라는 이름을 들었을 때 먼저 떠오른 것은 잘 익은 감이었다. 왜 홍시당이라고 지었을까. 시계와 먼저 인연을 맺은 홍정흠 대표는 홍정흠의 ‘홍’과 시계처럼 정확하게 살자고 시계의‘시’를 붙여 가게 이름을 지었다고 한다. 시계 수리 기능사였던 홍 대표는 1976년 성남에 자리잡고 시계수리를 시작했다. 한 개에 500원, 800원 비용을 받고 아침 8시부터 밤 11시까지 눈코 뜰 새 없이 시계를 수리했다. 지금은 눈이 어두워져 예전 같지 않다. 가게 서랍에는 오래된 손목시계들이 모여 앉아 멈춰진 시간을 돌아보고 있었다. 시계를 수리하면서 귀금속을 팔기 시작한 건 1985년부터다. 가게 앞에 흐르던개천(독정천)이 덮여 도로가 놓이고 상수도 시설이 변변찮아 곤란을 겪던 곳에 수도가 생겼다. 세월이 흐르는 동안 도시는 변했고, 시대를 풍미하던 유행 또한 변해왔다. “전에는 결혼예물을 부모님이 하라는 대로 쌍가락지와 보석 반지, 시계, 목걸이 등 격식에 맞춰 준비했어요. 그런데 지금은 그렇지 않아요. 커플 반지만으로 예물은 생략돼요. 남은 비용은 결혼 자금에 보태죠.” 홍 대표가 달라진 결혼 풍속에 대해 이야기했다. ‘우리의 이전 모습은 어땠을까?’ 생각하는 사이 홍시당의 1976년부터 현재까지 이야기는 계속해서 이어졌다. “돌잔치 선물로는 대부분 금반지를 사 들고 갔는데 지금은 금값이 많이 올라서 잘 하지 않아요. 3만 원 정도 하는 아기 반지(한 돈)를 하루 평균 30개를 팔았어요. 90년대, 5만 원 할 때까지 돌 반지 선물이 유행했었죠. 지금 금값은 20만 원이 넘어요.” 돌잔치 상에 놓이던 돌 반지는 현금으로 대체되고 있다. 1997년 외환위기로 1998년 금 모으기 운동을 할 때는 사람들이 예물이며 돌 반지 가릴 것 없이 들고 와서 은행 앞에 줄을 섰다. 당시, 금 감정을 했었다는 홍 대표는 “금이란 금은 모두 나온 듯, 큰 자루로 하나 가득 몇 자루씩 모였다”고 말한다.
벽에 붙어 째깍거리는 여러 모양의 벽시계 중 뻐꾸기시계는 1990년대 대부분 집에서 가장 눈에 잘 띄는 곳에 걸려 있었다. “뻐꾹~ 뻐꾹” 시간을 알리던 시계는 이제 부엉이 모양 시계에 자리를 물려줬다. 부엉이가 부귀영화를 가져다준다고 해서 부엉이 모양은 다양한 물건의 디자인에 사용되고 있다. 매시 20분에 울리도록 설정됐는지 긴 바늘이 4를 가리키자 댕댕댕 종소리가 울렸다. 가게 구석진 자리에 걸려 있는 뻐꾸기 시계는 중심부에서 울려대는 부엉이 시계 소리를 들으며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 궁금했다. 홍 대표의 이야기는 다양한 성남의 이야기로 이어졌다. “1976년, 제가 성남에 자리 잡았을 때는 요 앞에 개천(독정천)이 있었죠. 천 옆으로 도로가 있었는데 버스 한 대가 지나다닐 정도의 길이었어요. 사고라도 나면 버스들이 가게 뒤편, 마을 길로 지나다녔어요.” 비만 오면 침수돼서 살기 어려웠던 곳에 아스팔트가 덮여 편하게 오갈 수 있는 길이 됐다. 상수도 시설이 돼 있기는 했지만, 물이 격일제로 나오고 수질도 좋지 않아 공동우물을 이용했다는 얘기, 선거운동 홍보에는 물차 한 대 끌고 와서 식수를 보급해 주는 것이 최고였다는 이야기가 전설처럼 들려왔다. 시계의 전지를 교체하러 손님이 들어왔다. 수리비를 휴대폰으로 계좌이체하고 간다. 현금은 카드에게 자리를 물려줬고, 현금 지급도 계좌이체로 가능한 세상에서 홍 대표에게 들은 세월의 흐름과 변한 것에 대한 이야기는 ‘지금’에게 자리를 물려주고 지나간 먼 옛날 ‘추억’의 한 편이었다.
취재 윤해인 기자 yoonh1107@naver.com 취재 박인경 기자 ikpark9420@hanmail.net * 이 지면은 재개발로 사라져가는 성남의 모습을 시민과 함께 추억하기 위해 만들어졌습니다. 주변에 30년 이상 오래된 이색가게, 선한 영향력을 끼치는 착한가게, 장인 등이 있으면 비전성남 편집실로 알려 주시기 바랍니다. 전화 031-729-2076~8 저작권자 ⓒ 비전성남,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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