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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 남아공월드컵 국가대표 골키퍼 정성룡 선수

  • 관리자 | 기사입력 2010/07/26 [17:15] | 본문듣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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뜨거운 이 여름, 온 나라를 폭염보다 뜨거운 흥분과 감격의 도가니로 몰아넣은 월드컵이 이제 국민의 환희와 눈물을 뒤로 한 채 다시 4년 뒤를 기약한다. 이번 남아공월드컵에서 16강 진출을 이끌어낸 주역, 우리의 국가대표 골키퍼 정성룡(성남일화·사진) 선수를 만나보았다.


정 선수의 활약은 대단했다. 

그리스전에서는 전반전 햇빛이 눈을 가리는 악조건 속에서도 놀라운 집중력을 발휘했고, 아르헨티나전에서는 테베스, 이과인 등 최고의 공격수들이 뿜어내는 유효슈팅을 잘 막아냈다.

16강이 확정되던 나이지리아전에서는 동료들이‘아이 어르기 ’세리머니를 통해 정 선수의 득남을 축하해주기도 했다. 이번 월드컵에서 8년간 우리나라의 수문장이었던 이운재 선수를 대체할 수있는 국가대표 골키퍼 정성룡 선수를 확인한 것은 대단한 수확이었다.

현재 분당구 정자동에 사는 정성룡선수는 성남과 인연이 깊다. 분당 한솔초등학교 축구부 창단멤버였으며, 성남 중앙초등학교를 거쳐 서귀고, 포항 스틸러스 등 외지로 나갔다가 다시 성남일화로 돌아왔다. 

원래는 수비수였으나 중2때부터 골키퍼의 길로 접어들었다. 2008년 코트디부아르전에서 85m골을 골인시켜 골 넣는 골키퍼로 유명해졌다.

키 190cm, 몸무게 85kg의 거인이지만 낮고 느린 톤의 그의 말을 듣고 있으면 한없이 순한 소를 연상하게 된다. 

그렇다면 오늘 대한민국 최고의 골키퍼 자리에 오른 그의 악바리근성은 어디서 나온 것일까?

“제주 서귀고등학교 1학년 때 학교를 들어가자마자 아버지가 돌아가셨어요.그때 서귀고등학교 설동식 감독님께서 ‘힘을 내라. 네가 성공하는 길만이 효도하는 길’이라고 말씀하시고 격려해 주셨어요.” 그때가 인생의 전환점이었다. 소년이 반드시 성공해서 국가대표가 되겠다고 결심한 순간이었다. 누나는 어렸을 때부터 몸이 불편했고 홀로 되신 어머니와 누나를 보살펴야 하는 사람은 정 선수, 15살의 가장이었다.

- 연습에는 장사 없다. 죽을 만큼 노력하자. 안심하면 무너진다. 불안하면 연습하자. 나를 넘어서야한다. -

정 선수의 미니홈피에는 자신을 채찍질하는 문구로 가득하다. 이제 25살, 결혼을 일찍 한 것도 어머니를 생각해서였단다. 지금도 정 선수의 집 가까운 곳에사시는 어머니는 손자가 태어난 것을 누구보다도 제일 기뻐한다. 아기는 모든 사람들에게 사랑을 받으라는 의미에서 태명을 ‘사랑’이라고 지었다.

닮고 싶은 사람이 있다면 누구인가라는 질문에 “김병지 선수와 이운재 선수의 장점을 닮고 싶다”고 한다. 욕심이많은 것이 분명하다. 두 선배는 같이 훈련하면서 조언도 잘해주고 많이 가르쳐준다고.

월드컵 때 본인이 골키퍼로 출전한다는 말을 처음 들었을 때 기분이 어땠을까? 

“항상 기다리고 있었어요. 언제 기회가 올지 모르기 때문입니다. 포항 스틸러스에 있을 때부터도 준비하고 있었어요.” 꿈을 이루고 성공하는 사람들의다른 점이 무엇인지 명확해지는 순간이었다.

“나이지리아전에서 16강이 확정되었을 때 가장 기뻤어요. 제일 아쉬웠던 건우루과이전에서 져서 8강 탈락했을 때였지요. 선수들은 울고…, 이번 월드컵은 크게 보아 시작이었습니다. 이번 계기를 통해 ACL(AFC챔피언스리그)대회, 더 나아가서 아시안컵, 2014년 월드컵 본선 진출 때까지 최선을 다하고 싶어요. 

이제 박지성, 이청용, 박주영 선수처럼 해외파가 더 많이 생겼으면 해요.저도 기회가 된다면 해외진출을 해보고 싶고요, 우리 축구가 성장하려면 먼저 K-리그가 더 활성화되면 좋겠어요. 7월31일 탄천종합운동장으로 응원 많이 와주세요.”

꿈을 이루어가는 선수 정성룡, 4년 뒤 우리는 분명 그의 놀라운 성장에 다시금 감탄할 것이고 세계는 그를 주목할 것이다.

구현주 기자 sunlin-p@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