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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네 한바퀴] 궁안마을, 궁내동 숲길

봄빛 가득한 도시 꽃길을 지나 독립의 역사를 만나다

  • 비전성남 | 기사입력 2021/03/23 [14:09] | 본문듣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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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01 안동권씨 재실(齋室) 02 금곡동 카페 03 산책하고 있는 시민들     © 비전성남

 
대왕판교로를 사이에 두고 한국도로공사 서울영업소 맞은편 길로 들어서니 낮은 산 아래 새로 만들어진 궁안마을 산책길이 있었다. 비포장 길에서 날리는 흙먼지와 쓰레기로 어지럽던 곳이 도시 숲길로 변했다.
 
팔랑나비 두 마리가 서로 부딪칠 듯 날갯짓하며 숲길에 심어 놓은 작은 나무 틈으로 숨어들었다. ‘봄이 왔나 봄’, 어디선가 봤던 글귀가 떠오른다.

궁내동 수도용지(670m)에 꽃길이 조성된 건 작년 11월이니 이 길에 가꿔진 식물들은 올봄 사람들과 첫인사를 나누게 된다.

따뜻한 햇볕과 봄바람이 나무줄기와 땅을 두드려 나긋나긋하게 만들고 있는 길 위를 한결 엷어진 옷차림을 한 사람들이 산책하는 모습이 간간이 보였다. 철쭉과 조팝나무 같은 꽃나무를 심었다니 봄 색깔이 자못 기대된다.
 
이 길은 독립운동가 전월선 지사(1923-2006)가 산책하던 길이기도 하다. 산책로 끝에서 동양파크타운을 지나면 누리 1번 버스가 다니는 길이다.
 
야외 테이블에 앉아 이야기를 나누는 사람들을 보며 ‘저들은 봄이 불러서 나온 것일까, 봄을 맞이하러 나왔을까’라는 생뚱맞은 궁금증이 일었다. 궁내동 주민을 위한 또 하나의 산책길이 시작되는 곳으로, 이곳 또한 수도용지를 활용해 꽃길을 조성한 길이다. 경사진 길을 따라 올라갔다.

춥지도, 덥지도 않은 봄기운과 잘 어울리는 산책길이다. 겨우내 움츠렸던 몸에 봄의 생기가 스며드는 기분 좋은 길이다. 쇠박새, 오목눈이가 이 나무 저 나무 사이를 바쁘게 오가고 있었다. 산책길을 내려와 다시 마을 길을 걸었다.
 

▲ 눈인사를 나누고 있는 고라니     ©비전성남

 

▲ 꽃길     © 비전성남


조선 중종과 숙의 이씨 아들인 덕양군 ‘이기’와 손자 ‘이수’의 묘가 멀리 보인다. 차단기가 설치돼 있어 들어가 볼 수 없음을 아쉬워하며 오른쪽 길로 방향을 틀었다.
 
산 입구에서 들려오는 바스락거림에 눈을 돌렸다. “저기 고라니가 있어요.” 바로 앞 언덕에서 고라니가 움직이고 있었다. 마을인근에서 살아서일까? 우리를 경계하기는커녕 여러 번 눈 인사까지 나눈다.
 
봄에 만난 길, 바야흐로 피어난, 그리고 피어날 꽃, 고라니와의 조우…. 평온하게 마을을 돌아보고 나오던 중 낯익은 얼굴이 조각된 동상이 눈에 들어왔다. 동상 아래 바닥 돌엔 분명 백범 김구 선생의 흉상이라고 새겨져 있다.
 
갑작스런 동상의 출현에 놀라고, 따뜻한 봄빛 가득한 시간에 그늘지고 외진 곳에 김구 선생의 동상이 있다는 것이 놀랍고 안타까웠다. 동상 뒤쪽에는 축하 글이 새겨진 듯한 돌판 3개가 놓여 있었다.
 
왜 이곳에 김구 선생의 동상이 있는 것일까. 봄빛과 도시 숲길, 낮은 산, 갈아놓은 땅이 잘 어울리던 동네를 떠나며 질문한 보따리를 등에 지고 나왔다.
 
이야기는 어느 마을에나 숨어있다. 단단하게 묶여 있던 겨울을 풀고 봄을 열었듯 우리는 궁내동, 궁안마을에서 숨어 있는 이야기 하나를 풀어낸다.

※ 궁내동은 법정동으로 금곡동 행정복지센터에서 관할한다.
 

▲ 수도용지에 조성된 궁내동 꽃길 언덕    © 비전성남

 
취재 박인경 기자  ikpark9420@hanmail.net 
취재 윤해인 기자  yoonh1107@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