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금빛으로 물든 벼가 익어 고개를 숙이고, 그 위를 잠자리 떼가 수를 놓는다. 널따란 호박잎을 이불 삼아 누워 있던 애호박 하나가 빼꼼히 얼굴을 마주 댄다. 풍경도, 위치도 익숙지 않은 마을, 동원동이다.
“어디서 어디까지가 동원동이에요?” 지나가는 주민에게 물었다. “우리 마을은 동원 1통, 2통으로 나뉘어 있는데 여기는 동원 1통이에요”라고 알려 준다.
동원동은 분당구에 속한 동네로 구미1동에서 행정을 맡고 있다. 탄천을 향해 흐르는 동막천을 사이에 두고 용인 수지구 동천동과 어울려 있다. 가을이 물들어 있는 들판에서 허수아비인 양 서 있어 보았다. 저 멀리 미금역 주변 높은 아파트 단지가 보였다. 딴 세상에 와있는 느낌이다.
김장 준비를 하는 것일까. 밭에선 무와 배추가 쑥쑥 자라고 있다. 호박, 가지, 토란, 고추는 가을걷이를 기다리고 있다. 무엇보다 마을을 정겹게 하는 것은 논이었다. 성남시, 도심 바로 곁에 논이 있다는 게, 토실토실 알곡을 맺은 벼가 고개를 숙이고, 타닥타닥 메뚜기가 뛰어노는 풍경 속에 우리가 서 있다는 것 자체가 꿈결 같았다.
동원 1통엔 지난해 중순 버스(누리4 버스)가 운행을 시작해 교통 상황이 좀 좋아졌다. 누리4 버스는 동원동과 판교역을 잇는다. 비록 단 1대의 버스가 평일에만 운행하지만 마을에 버스가 들어온다는 소식은 마을잔치를 벌일 정도의 큰 경사였다.
누리4 버스 회차 지점을 찾다가 관리가 잘된 큰 묘역이 있어 걸음을 멈췄다. 자전거를 타고 지나가던 어르신께 묘역에 대해 물었다.
“김해김씨 석성공파 묘역이에요. 나는 21대손이고, 여기서 태어나 지금까지 살고 있어요. 아주 조용하고 한적한 동네에요.”
마을버스 회차 지점 근처엔 산의 들머리가 있다. 성남누비길 제5구간 태봉산길의 시작점이다.
김진배(73) 어르신이 가르쳐 준 길을 따라 자동차로 동원 2통을 찾아 나섰다. 낙생저수지와 가까운 동네다. 군데군데 놓인 집이 14가구 정도고, 나머지는 농지가 대부분이다. 동원 2교를 건너면 바로 용인시 수지구 동천동, 머내마을이다.
동막로를 건너니 안골마을로 이어진다. 교행을 해야 할 만큼 길이 좁다. 좁은 길을 벗어나면 널따란 논이 있고 또 밭이 있다. 안으로 쑥 들어가자 수확을 앞둔 고구마의 줄기를 따는 아주머니들이 있었다. 아주머니들 뒤로 주택 몇 채가 보였다. 가을 낮 햇볕에 농작물들이 줄기 끝까지 여물어 가고 있었다.
주택보다 논과 밭이 많은 동네, 동원동은 성남의 또 다른 모습이었다. 동네 한 바퀴를 돌면서 만난 사람 중 어떤 이는 “지금처럼, 동원동의 풍경을 오래도록 간직하고 싶다. 맞은편에 보이는 우뚝선 도시가 전혀 부럽지 않다”고 했다.
그런 모습은 언제까지 남아있을 수 있을까. 동원동은 낙생공공주택지구로 지정돼 개발될 예정이다.
취재 박인경 기자 ikpark9420@hanmail.net 취재 윤해인 기자 yoonh1107@naver.com
저작권자 ⓒ 비전성남,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
많이 본 기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