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시대 문과 시험 종류
1392년 고려에서 조선으로 왕조가 교체됐다. 그러나 왕조 교체와 상관없이 과거는 사대부가 관직으로 진출하기 위한 수단으로 꾸준히 사용됐다.
과거는 958년(광종 9) 후주(後周: 5대 10국 중 5대의 마지막 왕조)에서 귀화한 쌍기(雙冀)라는 사람에 의해 처음 시행됐다. 960년에 송(宋)나라가 건국됐기 때문에 과거는 송나라 과거제가 아닌 당나라 과거제로 고려에 도입된 것이다.
고려 문과시험은 주로 제술업과 명경업으로 이뤄졌으나, 조선시대 문과시험은 표(오른쪽 상단)와 같이 종류가 다양했다.
시험은 시행 시기에 따라 정기적으로 치르는 정기시와 비정기적으로 치르는 비정기시로 나눌 수 있다.
정기시에는 십이지 중 자(子)·묘(卯)·오(午)·유년(酉年)의 3년마다 치러지는 식년시와 천간 중 병(丙)·정년(丁年)의 10년마다 실시되는 승진시험인 중시가 있다.
그리고 비정기시는 모두 나라에 경사가 있거나 인재 등용이 필요한 시기에 치러진 별시로 구성돼 있다.
별시에는 증광시, 알성시, 별시, 외방별시, 정시, 친시, 춘당대시, 기로과 등이 있다. 별시2로 표현한 현량과, 개시, 충량과, 식희과, 구현과는 조선 과거사에서 오직 1번만 실시돼 별시와 차별을 뒀다.
비정기시 중에서 독특한 이름의 발영시, 등준시, 진현시, 탁영시라는 시험이 있는데 모두 중시와 똑같이 과거 급제자들이 한 번 더 시험을 보는 승진시험이라 할 수 있다. 즉 중시의 일종이라 할 수 있다.
참고로 조선시대 500년 동안 10년마다 실시되는 중시 횟수가 52회인 것은 세조 때 2년(세조 12·14) 사이에 실시됐고, 성종 초에 3년(성종 7·10) 기간을 두고 실시돼서 2회(세조 14·성종 10)가 추가된 것이다.
별시 중 증광시는 1401년(태종 1) 처음 실시됐는데, 왕이 즉위하면 반드시 즉위증광시를 실시했다. 그래서 왕이 사망하면 즉위증광시가 열리므로 증광시는 ‘준정기시’로 볼 수 있다. 참고로 조선 국왕 중 세조, 성종, 인종만 즉위증광시를 실시하지 않았다.
세조는 조카로부터 왕위를 빼앗아서 즉위증광시가 없었고, 성종은 바로 선왕인 예종의 즉위증광시가 채 1년이 지나지 않아 실시하지 않았고, 인종은 재위 기간이 너무 짧아 과거를 실시한 적이 없다.
조선시대에 과거를 시행한 기간이 502년(1393~1894)이다. 문과가 804회 실시된 것을 보면 매년 1.6회의 과거가 있었다고 보면 된다. 매회 평균 선발인원은 약 19명 정도다.
조선시대 문과 실시 횟수가 많은 것은 관직 진출의 주요한 통로인 과거를 이용해 사대부들을 양반 관료 체제 안에 귀속시켰기 때문이다. 즉, 과거는 일종의 ‘사회 안전핀(social safety pin)’ 구실을 했다고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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