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3천 명대 고등동의 인구가 고등공공주택지구에 아파트가 들어서면서 만 명으로 크게 늘었다. 대왕판교로를 사이에 두고 있는 고등동은 앞마을, 옆마을이 딴 세상인 것처럼 다른 모습을 보였다. 고등동 12개 통 중 고등 1통과 2통은 개발제한구역이다. 그곳, 고등동의 옛 모습을 간직하고 있는 방향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어릴 때 시골에서 봐왔던 모습을 가진 고등동우체국, 우체국 앞에 서 있는 빨간 우체통이 정겹다. 우체국에 들어가 물어보니 1963년에 고등동에서 업무를 시작했다고 한다. 60년 세월이 건물에 친근함을 새겨 둔 듯, 오래돼 보이면서도 낡아 보이지 않는다.
근처 주택 사이 골목길을 따라 걸었다. 골목길은 재밌다. 벽에 기대고 서 있는 손수레가 보이니 다음에는 뭐가 있을까? 궁금함에 이끌리며 걷고, 걷다 보니 한 살 한 살 어려지는 느낌이었다. 어디 있다가 툭툭 튀어나오는지 모르겠지만 골목길 따라 어린 시절 추억도 따라왔다.
길 끝에서 상적천과 만났다. 백로가 낯선 이의 발자국 소리를 들었는지 큰 날개를 펴고 날아갔다.
머금었던 따뜻함을 피워내는 들도 많지만 고등 1통엔 화훼농원도 많다. 비닐하우스에선 곧이어 풍성해질 꽃 화분을 분양하고 묘목 가꾸기에 한창이다.
파밭 옆, 낮게 박힌 개발제한구역 알림이 보였다. 쭉쭉 뻗은 아파트가 들어선 건너편 동네와 다른 이유다. 개발이 꼭 좋다고 말할 순 없지만 다름의 표식이 갖는 의미는 컸다. 개발제한구역이란 표식은 식당, 카페, 농원,사무실, 주택 모두 낮게, 낮게 한 마을을 만들었다.
마을 길을 돌아 나오니 토끼마당 삼거리 근처다. 토끼들이 뛰어다녔던 곳일까. 이름이 예쁘다.
고등동 한 바퀴에서 빠질 수 없는 곳, 등자리마을 방향을 따라 길을 건넜다. 봄이면 하얀 배꽃이 마을을 수놓고, 여름이면 하얀 배꽃은 배를 품는다. 등자리마을의 등자배는 지역 특산물로 70년 가까이 등자배 이름으로 불리고 있다.
논과 밭을 품고 있는 마을엔 매화꽃이 한창이었다. 물길 따라 향긋한 미나리가 자라고 오래된 집과 새로 지은 집이 이웃사촌 하며 서로 잘 어울려 있었다.
옛말에 까치가 울면 손님이 온다고 했다. 까치는 낯선 사람이 오면 깍깍거리며 소식을 알렸다고 한다. 전깃줄에 앉아있는 까치를 렌즈에 담아보려 하자, 깍깍~ “마을에 낯선 사람이 나타났어요”라고 알리는 듯하다.
배꽃 향연을 보기 위해 산기슭을 오르는 길에 농업용수로 쓰기 위해 만든 등자소류지가 있다. 농업용수로 쓰기 위해 만들어진 인근 저수지가 도시개발로 그 역할이 사라졌지만 등자소류지는 주변에 경작지가 많아 아직 제 역할이 있는 것 같다.
등자소류지와 토끼굴을 지나니 드디어 배밭이다. 배꽃이 피면 꽃을 솎아내기 위해 잦은걸음을 옮겨야 한다. 그래야 가을에 먹음직한 배를 딸 수 있다.
등자리마을 뒤쪽으로 노을이 번지기 시작했다. 새소리가 더 선명하게 들렸다. 여러 가지 새가 어울려 마을을 바쁘게 오가는 사이에 애국가가 울려 퍼졌다. 시계를 보니 오후 6시다.
한때 6시면 전국에서 들리던 애국가가 옛 그림처럼 마을에 울려 퍼졌다. 바람 끝이 선선해지는 시간에 들리는 애국가. 지나가는 하루가 다독다독 어깨를 두드려 주는 것 같았다.
취재 박인경 기자 ikpark9420@hanmail.net 취재 윤해인 기자 yoonh1107@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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