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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서각 산책] 조선왕실의 단오 풍경

단오는 본격적인 여름을 맞기 전 초여름을 알리는 명절

  • 비전성남 | 기사입력 2022/05/23 [16:14] | 본문듣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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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05년 단오 시 두 분 마마 의대 아기씨 의복 발기(을ᄉᆞ 단오 두분마마 의ᄃᆞㅣ 아기시 의복 ᄇᆞᆯ긔)」,1905년(광무 9), 1장, 필사, 25.7×86.4cm, 한국학중앙연구원 장서각     

 

돌아오는 6월 3일은 단오(端午)다. 단오는 음력 5월 5일로 1년 중 양기(陽氣)가 가장 왕성한 날이다. 일명 수릿날[戌衣日·水瀨日]·중오절(重午節)·천중절(天中節)·단양(端陽)이라고도 한다.

 

단오의 ‘단(端)’자는 처음, 곧 첫 번째를 뜻하고, ‘오(午)’자는 오(五), 다섯의 뜻으로 통하므로 단오는 ‘초닷새[初五日]’라는 뜻이 된다.

 

1518년(중종 13) 조선왕실에서는 단오를 설날인 정조(正朝), 추석과 함께 삼대명절 중 하나로 삼았다. 단오는 본격적인 여름을 맞기 전 초여름을 알리는 명절로, 이때 모내기를 끝낸 후 풍년을 기원하는 기풍제(祈豐祭)를 올린다.

 

지금은 단오 체험에서나 볼 수 있는 창포에 머리감기, 쑥과 익모초 뜯기, 부적 만들어 붙이기, 대추나무 시집보내기, 단오 비녀 꽂기 등의 풍속과 함께 그네뛰기·씨름·석전(石戰)·활쏘기 등과 같은 민속놀이가 단오에 행해졌다. 

 

『동국세시기』에는 단옷날이 되면 내의원(內醫院)에서 제호탕(醍醐湯)과 옥추단(玉樞丹)을 만들어 임금께 바쳤다는 기록이 보인다. 

 

제호탕은 사인(砂仁)·오매육(烏梅肉)·초과(草果)·백단향(白檀香) 등 한약재를 가루 내 꿀에 섞어 달인 일종의 청량제로 더위가 심해 건강을 해치기 쉬울 때 사용됐다. 옥추단은 일종의 구급약으로, 여름철 구토와 설사가 났을 때 물에 타서 마셨다. 

 

임금은 이 옥추단을 중신들에게 나눠줬고, 중신들은 약에다 구멍을 뚫고 오색실로 꿰어 허리띠에 차고 다니기도 했다. 이렇게 하면 급할 때 먹을 수도 있으려니와 악귀를 막고 재액을 물리친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단오 무렵에는 대나무 생산지인 전주·남원 등에서 부채를 만들어 진상했고 임금은 이 부채를 단옷날 중신들과 시종들에게 하사했는데, 이렇게 단옷날 선물로 주고받은 부채를 ‘단오부채[端午扇]’라 했다.

 

1604년(선조 37) 단오절에 선조가 승정원(承政院)·홍문관(弘文館)·실록교정청(實錄校正廳)의 관원들에게 주찬(酒饌)과 부채를 하사했으며, 1637년(인조 15)에는 인조가 안주(安州)의 군병들에게 부채 370자루를 나눠줬다는 기록이 있다.

 

이와 별도로 단오 때 더위를 피할 수 있는 여러 물품이 기록에 남아있는데, 특히 왕실의 여름나기 준비가 시작됐음을 알려주는 고문서가 한국학중앙연구원 장서각에 보관돼 있다.

 

장서각에는 복식, 패물, 음식 등 물품의 명칭을 기록한 ‘발기(件記)*’라는 조선왕실 고문서 948건이 있는데, 그중 1905년과 1907년 단옷날 왕과 왕세자 등에게 옷을 올린 내용의 문서 2건이 있다.

 

그중 하나인 이 문서는 1905년(광무 9) 단오에 두 분 마마의 의대(衣襨, 임금의 옷을 이르는 말)와 아기씨의 의복을 마련한 발기다. 노란색과 녹색 종이를 잇댄 문서에 정성들여 쓴 한글이 돋보인다.

 

문서를 살펴보면 두 분 마마는 고종(高宗)과 동궁마마인 순종(純宗)이며, 아기씨는 영친왕(英親王)이다. 두 분 마마는 의대라 칭하고, 영친왕인 아기씨는 의복이라 칭해 왕실 위계에 따라 복식 명칭에 차등을 두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또한 고종에게 황색 용포[뇽포]와 다홍색 안감[ㄴᆞㅣ쟉] 1세트, 은조사로 만든 쾌자[쾌ㅈᆞ]와 두루마기[쥬의] 1세트를 비롯해 두루마기, 저고리[동의ㄷᆞㅣ], 바지[봉디], 백저포로 만든 행전[ㅎᆞㅣㅇ젼] 등을 바쳤다고 적혀 있다.

 

따듯한 날이 찾아오면 봄·가을용 옷감으로 옷을 새로 지었는데, 보통 왕비가 모시로 만든 백저포(白苧布)를 입는 시기가 단오로 왕실의 여름 나기 준비가 이때부터 시작됐다고 할 수 있다.

 

* ‘발기’는 한글로 ‘ᄇᆞᆯ긔’, ‘건긔’, ‘단자’ 혹은 한자로 ‘건기(件記)’, ‘발기(發記)’, ‘단자(單子)’ 등으로 표기된 문서를 말한다.

 

하은미 한국학중앙연구원 장서각 연구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