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트 앞, 빈 상품 박스에서 잠깐 눈길을 거두고 가게 주인에게 물었다. “이 상자 가져가도 돼요? 이삿짐 싸려고요.” 이삿짐을 싸려면 상자가 많이 필요했다. 이사 가기 여러 날 전부터 상자를 얻어다 쌓아 두었다. 포장 이사란 게 생기기 전 일이다.
“트럭 짐칸에 짐과 함께 사람이 타고 가기도 했어요. 차편이 마땅치 않으면 짐칸에 사람도 태우고 갔죠. 트럭 뒤칸에 사람이 타는 건 불법이지만 그때는 경찰도 이삿짐 트럭만큼은 묵인해줬어요”라며 권정희 소장의 달라진 이삿날에 대한 이야기가 시작됐다.
수정구 신흥동에서 이삿짐센터를 운영하는 권정희(대한익스프레스) 소장은 30년간 이삿짐을 날랐다.
031-48-2424란 전화번호를 간판에 새기고 시작했는데 흐르는 세월 속에서 성남시 모든 전화번호 국번 앞자리에 숫자 7이 붙어 031-748-2424가 됐다. 이삿짐센터란것을 알리기 위해 30년 전 신흥주공 한 채 값을 주고 산 전화번호다. 당시 이삿짐센터 전화번호 뒷자리는 하나같이 2424였다.
권 소장이 들려주는 이야기 틈으로 이사 가던 날의 추억 하나가 찾아들었다.
2톤 트럭에 실려 온 장롱, 장식장, 냉장고, 세탁기…. 이삿짐을 내리고 나면 기진맥진. 이삿날 먹는 짜장면은 왜 그리도 맛있었을까.
신문을 깔고 둘러앉아 배달된 짜장면을 이사하는 사람과 이사해 주는 사람이 어울려 함께 먹었다. 탕수육에 곁들여 오는 만두까지 푸짐하게 먹었던 이삿날과 짜장면에 대한 추억은 이사문화가 바뀐 지금도 여전하다.
권 소장의 사무실 한쪽에는 잘 정리된 이사 바구니와 싸개가 있다. 싸개는 새로 나온 가전제품에 맞게 이름이 적혀 있다. 포장 이사가 대세인 지금, 가전제품 손상을 막기 위해 반드시 갖춰야 할 품목 중 하나다.
그리고 사다리차다. 주택이나 아파트 등 높은 곳에 있는 짐을 밧줄을 이용해 나르던 것을 곤돌라가 대신했고, 그 뒤는 사다리차가 차지했다.
한창 바빴던 1996년, 성남에서 두 번째로 사다리차를 구입했다. 하지만 1997년 외환위기와 함께 일감은 줄고 성남에 30곳 정도였던 이삿짐센터가 300여 곳으로 늘었다.
손 없는 날이라고 해서 음력 9일, 10일, 19일, 20일…엔 이사하는 사람이 많았다. 언제부턴가 주말이나 휴일로 바뀌던 것이 지금은 금요일에 이사하는 사람이 많다. 포장이사 후 휴일은 그야말로 휴식을 취하고자 하는 것이다.
여전한 것은 자녀들의 학교 입학, 전학과 관련한 3월에 이사가 많다는 것과 장마철과 겨울철엔 이사하는 사람이 없다는 것이다.
“피아노가 유행하던 시절이 있었다. 나르기 힘든 피아노가 사라지는가 싶더니 이삿짐에 침대가 자리 잡았다. 흙침대와 돌침대까지, 이삿짐은 갈수록 무거워지고 건조기, 스타일러, 스탠드형 김치냉장고 같은 다루기 조심스러운 품목이 생겨났다”고 말하는 권 소장에게 마지막으로 그동안 궁금했던 몇 가지를 물었더니 이렇게 답한다.
Q 포장 이사는 어떻게 생겨났을까? 이삿짐 운반하러 갔는데 간혹 이삿짐을 싸 놓지 않은 사람들이 있으면 짐 싸는 걸 도와주다가 자연스럽게 포장 이사가 생겨났다.
Q 비 오는 날 이사하면 잘 산다는 말이 맞는 말일까? 비 오는 날 비 맞는 짐을 보며 이사하는 사람들이 위안 삼고자, 위로하고자 만들어진 말은 아닐까.
Q 포장 이사를 맡기면 어느 정도까지 짐을 정리해 둬야 할까? 귀중품이나 고가품만 챙기고 나머지는 손대지 말고 그대로 두세요. 그래야 이사 후 정리가 수월해요.
취재 윤해인 기자 yoonh1107@naver.com 취재 박인경 기자 ikpark9420@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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