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남시 수정도서관은 5월 한 달을 ‘성남작가주간’으로 정하고 다양한 행사를 개최하고 있다.
도서관 3층 모두의 공간에 ‘성남작가’ 코너를 마련해 작가들의 저서를 소개하고 시 작품을 전시 중이다.
매주 토요일 오후에는 소설가, 시인, 수필가, 문학평론가 등을 초청해 독자들과 이야기 나누는 ‘성남작가 릴레이 북토크’를 열었다.
5월 28일 오후 2시에 열린 성남작가 릴레이 북토크 마지막 회에서는 권영옥 시인, 연명지 시인이 독자들을 만나 각자 대표 시집인 『모르는 영역(권영옥)』과 『사과처럼 앉아 있어(연명지)』를 중심으로 창작활동, 시인로서의 삶에 대해 이야기했다.
독자들은 시인들의 시를 낭송했으며, 진행은 가천대학교 교수 최명숙 작가가 맡았다.
권영옥 시인은 2003년 『시경』에 시 5편을 실으며 작품활동을 시작해 『계란에 그린 삽화』 『청빛 환상』 『모르는 영역』을 출간했다.
현재 문학평론가, 서현 문화의 집 시 창작 강사, 『두레문학』과 성남문예비평지 『창』 편집위원으로 활동 중이며, 인터넷신문 ‘포스트24’에 시 평론을 연재하고 있다.
연명지 시인은 2013년 ‘미네르바’ 시선으로 『가시비』를 출간하며 문단 활동을 시작했다. 2014년 『시문학』에 등단하고 『사과처럼 앉아 있어』, 전자시집 『열일곱 마르코 폴로 양』을 출간했다.
성남민예총 문학위원장을 역임(2020~2021년)하고, 현재는 ‘포스트24’에 시집 소개 기자로 활동 중이다. 북토크에 참석한 독자의 호기심을 자극한 이름 ‘명지’는 어린 시절 불리던 이름이다.
권영옥 시인은 『모르는 영역』을 출간했지만 코로나19로 예정된 기념 행사가 모두 취소돼 아쉬웠음을 토로하고, 연명지 시인은 참석한 독자들에게 이름을 불러 달라는 부탁으로 북토크를 시작했다.
두 시인 모두 수정도서관의 ‘성남작가주간’ 행사에 고마움을 전했다.
북토크 첫 번째 질문은 “개인의 삶이나 경험, 성장 배경 등이 작품에 어떻게 투영되는가?”.
권영옥 시인은 소재 찾기가 힘들다는 시인이나 습작생들에게 “자신의 무의식을 들여다보라”고 권한다.
권 시인은 “꿈속에서 대여섯 살 아이가 살포시 웃는 그림자로 자주 다가오는데, 이는 자신의 무의식에 어린 시절이 있는 것”이라 생각한다.
연명지 시인은 “작품에 자신의 삶을 이야기하려면 용기가 필요하다. 말하지 않고는 견딜 수 없는 상처들을 쓰려면 기억의 아픔과는 불화해야 한다. 그래야 시와 화해할 수 있다”고 한다.
연 시인은 “시를 완성해 가는 동안 시의 자장력 안에 머물기 위해 산책을 하고 사유하면서 시의 골짜기를 파고 든다. 나를 외로움에 밀어 넣기도 한다. 완성된 시가 나의 아픔과 멀어져 있을 때도 있다. 그래도 시의 봉우리를 보기 위해 퇴고를 정성스럽게 한다”고 말했다.
연명지 시인은 2019년, 2021년 산티아고 순례길을 걸었다. “걷는 동안 그때까지 살아온 나와 오롯이 마주하면서 상처를 치유하고 성장하는 경험을 했다”며 독자들에게도 걸어보기를 권했다.
연 시인은 순례길에서 있었던 에피소드를 소재로 쓴 시 <나비 주의>를 소개했다.
의사의 권유로 걷기를 시작했다는 권영옥 시인은 집 뒤 불곡산을 걸으며 자연의 생생한 생로병사를 목격하고 감탄했다. 나무속에서 나오는 땅벌을 보며 영감를 얻기도 했다.
두 시인은 시집의 제목을 지은 과정도 털어놨다.
‘사과처럼 앉아 있어’는 프랑스 화가 세잔과 관련 있다. 세잔이 인물화를 그릴 때 자주 했던 말이 “사과처럼 앉아 있어”라고 한다.
연 시인은 그 말이 귀에 쏙 들어왔다. 2019년 산타아고 순례길을 걸을 때 시집을 들고 세잔의 아틀리에를 찾아갔다.
권영옥 시인은 출판사가 시집 출간을 결정할 때까지도 제목을 짓지 못했다. 어려웠다. 며칠을 고민하다가 잠시 잠이 들었는데 꿈에서 모르는 영상, 모르는 사람이 지나갔다.
그 꿈에서 ‘모르는 영역’이라는 제목을 얻었고, 시 한 편의 제목까지 ‘모르는 영역’으로 바꾸었다.
작가들 이야기 사이사이 독자들은 시를 낭송했다.
연 시인의 문우 이지우 작가는 연 시인의 <나비 주의>를 낭독했다.
전유라 독자는 권영옥 시인의 <통큰 아내>와 <모르는 영역>, 권영옥 시인에게 시 수업을 듣는 이선희 독자와 박옥수 독자는 각각 연명지 작가의 <산실주의보 – 사리아>, 권영옥 시인의 <흰 수건>을 낭독했다.
이선희 독자는 “북토크에 오기를 잘했다. 시도 낭송하고 이야기도 듣고 유익하고 보람있다”고 했다.
흰 수건
채전은 나비에게 경계 너머에만 있습니다 나비가 울타리를 넘어와 파밭을 돌더니 어제처럼 손을 빕니다 나비 손이 파꽃 위에 봉긋이 모아질 때 장맛비가 날아와 파꽃을 텁니다
생전처럼 마음 급한 나비는 문턱을 돋우느라 손톱 밑이 새까맣습니다. 눈을 떴다 감았다 잠깐의 쪽잠도 힘듭니다
왜 손바닥만 비빌까 나비의 눈을 가만히 들여다 봅니다
안구에 흰구름이 끼고, 자면서도 웅얼웅얼 파꽃이 비에 엎어질까 파씨가 뿌리내리지 못할까
엄마인지 단박에 알아버렸습니다.
어마의 파뿌리를 딛고 선 나도 파꽃여자입니다.
박옥수 독자는 “엄마를 보는 것 같다. 읽는 동안 어머니가 많이 그리웠다”고 했다.
<흰 수건>은 권영옥 시인이 오빠가 위독하다는 소식을 듣고 고향에 갔을 때 ‘석양 아래의 마을, 하얀 꽃이 핀 파밭, 그곳에 앉아 일을 하고 계신 어머니’를 마주하고 떠올린 시다.
북토크는 작가들의 앞으로의 활동과 독자와 대화로 이어졌다. 두 작가 모두 앞으로의 활동에는 세상과 사람을 보듬는 이야기, 세상을 좀 깊이 들여다보는 시선이 담길 예정이다.
‘성남작가 릴레이 북토크’ 1회와 3회도 진행한 최명숙 작가는 “작가를 만나고 작품을 향유하는 것은 설레고 기대되는 일이다. 같은 지역에 가까이 살고 있는 작가와의 만남은 더더욱 그렇다. 우리 삶의 공간이 어떻게 표현됐는지 확인도 하고, 거기에서 표현의 욕구를 느낄 수 있다. 이번 행사가 지역에서 꾸준히 활동하는 작가와 시민들에게 뜻깊은 기회였을 것”이라고 했다. 성남에서 활동하는 작가들의 작품들은 수정도서관 3층 ‘모두의 공간’에서 계속 만날 수 있다.
취재 전우선 기자 folojs@hanmail.net 저작권자 ⓒ 비전성남,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
많이 본 기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