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을 나서며 문을 닫고 현관문을 잠그고 열쇠를 챙겼다.
열쇠만 달랑 주머니에 넣었다가 잃어버릴까 봐 열쇠고리에 끼워 넣고 다녔다. 열쇠를 줄에 걸어 목걸이를 하고 다니는 아이들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었다.
열쇠의 개수가 여의치 않을 때는 화분 밑, 신발장, 우편함에 넣어 두고 한 개의 열쇠를 식구들끼리 공유하기도 했다.
“화분 밑에 열쇠를 두면 안 돼요. 아주 위험해요”라며 신형열쇠 장진호 대표는 주의를 당부했다. 우리 가족만 알고 있을 거란 비밀 장소는 도둑의 표적이 되는 곳이었다.
장진호 대표는 군대 제대 후 일찌감치 열쇠 깎는 기술을 배우고 열쇠가게를 차렸다. 33년 전 일이다. 자물쇠에 톱니바퀴 홈을 가진 열쇠를 끼워 맞춰 돌려 열던 시절이었다.
번호를 누르거나 지문을 이용해 문을 여는 디지털 도어록이 아파트 현관에 자리를 잡기 시작하면서 쇠로 만든 자물통과 열쇠는 사라지기 시작했다.
“영화에서 보면 옷핀이나 클립으로 쉽게 문을 열던데….”
“허허, 말도 안 되는 소리…. 그건 영화에서만 가능한 거예요. 실제로는 그렇게 문을 열 수 없어요.”
현관문을 열기 위해 출장을 자주 나갔던 장 대표에게는 문을 열어주기 위한 조건이 있었다.
“열쇠를 분실했다는 의뢰를 받고 출장을 나가면 제일 먼저 그 집에 정말 사는 사람인지 확인해야 해요. 신분증상의 주소와 일치하는지, 옆집에 확인하든지, 문을 열었을때 집안에 의뢰인의 사진이 있어야 해요. 만약 그렇지 않다면 문을 열어도 바로 닫아버리죠.”
당시 5천 원이던 기본 출장비가 지금은 2만 원으로 껑충 뛰어올라 있다.
33년 전, 가게는 허름했다. 가게가 너무 넓거나 깔끔하고 번쩍이면 물건이 비쌀까 봐 손님이 들지 않았다. 예전에는 허름한 가게여야 손님이 많이 들어왔지만 지금은 그렇지 않다.
실제 신형열쇠 가게내부는 여러 가지 모양의 열쇠가 전시장처럼 깔끔하게 진열돼 있었다. 자동차 열쇠, 독서실 사물함 열쇠, 번호형 자물통, 현관문 열쇠. 번호키, 지문인식형 등 가게 안의 열쇠를 둘러보면 시간의 흐름이 보였다.
자식 혼사 시킬 때 유행하던 말 중엔 아파트, 사무실, 자동차 키? 열쇠 세 개는 가져와야 혼사 잘 시킨다고 했었다.
출입문 잠금장치가 디지털로 바뀐 지금은 어떤 유행어로 대체됐을까 궁금하다. 그러고 보니 남성들이 허리춤에 차고 다녔던 열쇠꾸러미에 열쇠가 많이 달려 있을수록 좀 사는 집인가 보다라고 판단하던 시절도 있었다.
“자동차 키를 잃어버렸다고 하루에 두 번 만들러 온 손님이 있었어요. 식구 수에 따라 열쇠를 복 사하던 사람들도 많았죠. 예전에는 하루 평균 30~40개를 복사했는데 지금은 10개 정도 만들고 있어요.”
열쇠를 잃어버려 암담했던 기억은 이제 비밀번호를 잊어버려 곤란한 기억으로 대체됐다. 주머니를 차지하던 열쇠도 줄었고 선물로 애용되던 열쇠고리도 사라졌다.
하지만 “잠금장치가 아무리 발전해도 열쇠와 자물쇠의 쓰임은 오래도록 남아 있을 것”이라고 장 대표는 귀띔했다.
아직 쇠로 만든 열쇠가 대부분인 다른 나라와 달리 우리나라는 번호키가 많이 쓰이고 있다. 내 손에서 딸깍 열리고 닫히는 열쇠의 손맛은 오래도록 남아 있을 것 같다.
취재 윤해인 기자 yoonh1107@naver.com 취재 박인경 기자 ikpark9420@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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