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 기운이 느껴지기 시작하는 9월. 지난여름 유별났던 더위와 기나긴 우기에 지쳤던 마음에 여유를 선물해준 강연이 있었다.
9월 6일(화) 오후 2시 분당 수내동 코끼리 전통시장 지하에 위치한 코끼리서점(대표 문선미)에서 신미나 시인의 강연이 있었다.
시인일 때는 신미나로, 웹툰 작가일 때는 싱고라는 필명으로 활동하는 작가는 2007년 경향신문 신춘문예 시 부문에 <부레옥잠>이 당선되며 등단했다.
작품에는 시집 『싱고, 라고 불렀다』, 『당신은 나의 높이를 가지세요』, 웝툰 에세이 『詩누이』, 청소년 마음 시툰 『안녕, 해태』(전 3권) 등이 있다.
청소년 마음 시툰 「안녕, 해태」는 2019년 연재만화 제작 지원 사업 선정작으로 교과서에 수록된 시와 청소년들이 읽으면 좋은 시를 작가가 직접 선정해 웹툰으로 그린 작품이다.
신미나 시인은 시를 청소년들의 일상을 담은 웹툰으로 그려낸 ‘시툰(詩+Webtoon)’이라는 새로운 장르를 만들었고 시 읽기의 새로운 방향을 제시했다는 평을 받는다.
작가는 시가 너무 어렵고 이해하기 힘들다는 질문을 많이 받았다고 한다. 시를 읽는 쉽고 좋은 방법 중 하나가 그림으로 연상하면서 읽는 것이다. 작가의 시중 ‘입하(立夏)’라는 시를 소개했다.
나뭇가지에/ 생쌀이 열렸네/ 입하입하입하/ 이팝나무/ 이팝이팝이팝/ 이밥나무
이 시는 이팝나무에 하얀 쌀밥처럼 핀 꽃이 눈에 보이는듯하면서도 입하라는 발음과 이팝과 이밥의 언어유희도 재미있게 표현 했다.
시는 또한 내가 경험한 것들의 기억이나 추억을 소환해주는 멋진 힘이 있다. 작가의 ‘매실’이라는 시는 할머니와의 따뜻한 기억을 불러내준다.
배탈 나면/ 찻숟가락으로/ 매일 액을 떠서/ 입에 흘려주시던 할머니/ 할머니, 하고 부르면/ 입이 먼저 시다
시의 내용 중 한 단어를 가리고 어떤 말이 들어가는지 맞추는 퀴즈도 진행했다. 작가는 정답도 좋고 자신이 시인인 것처럼 상상력이 가득한 단어를 넣어 볼 수 있도록 하면서 어른 독자들의 상상력을 끌어냈다.
참신한 대답으로 열심히 참여한 독자들에게 시인의 시집을 선물로 증정했다.
시툰 ‘구름 속에 숨은 별’을 소개했다. 어렸을 적 방학이면 친척집에 맡겨졌고 동갑내기 사촌에게 서운했던 마음이 사촌언니가 사준 하드와 갑자기 마주한 불꽃놀이에 사르르 풀렸던 시인의 기억이 담긴 시다.
이 작품은 동요로도 만들어져 잘 알려진 이병기 시인의 ‘별’이라는 시를 시툰으로 다시 엮어낸 작품이다.
별 이병기
바람이 서늘도 하여 뜰 앞에 나섰더니 서산머리 하늘은 구름을 벗어나고 산뜻한 초사흘 달이 별과 함께 나오더라
달은 넘어가고 별만 서로 반짝인다 저별은 늬 별이며 내 별 또 어느게오 잠자코 호올로 서서 별을 헤어보노라
‘감자는 용감했다’는 이시영 시인의 ‘슬픔’이라는 시를 웹툰으로 풀어놓았다. 시장의 가판대에 놓인 바가지에 담긴 감자를 보며 팔려가기 싫어했을 감자의 마음과 감자를 팔아야 하는 할머니의 마음을 느꼈을 노시인의 아름다운 마음이 너무 따뜻해서 쓰게 됐다.
슬픔 이시영
김포에서 갓 올라온 햇감자들이 방호시장 사거리 난전에서 ‘금이천원’이라는 가격표가 삐뚜루 박힌 플라스틱 바가지에 담겨 아직 덜 여문 머리를 들이받으며 저희끼리 찧고 까불며 좋아하다가 “저런 오사럴 놈들‘ 가만히 좀 있덜 못혀!” 하는 할머니의 역정에 금세 풀이 죽어 집 나온 아이들처럼 흙빛 얼굴로 먼 데 하늘을 쳐다본다.
자극적인 이야기로 대중의 관심을 끌려는 글과 영상이 난무한 시대에 맑고 순수한 이야기를 전하고 싶었던 시인에게 좋은 모티브가 된 작품이다.
몇 편의 시를 낭송하며 시를 쓰게 된 배경을 설명했다. 한 편의 시는 금방 읽히지만 그 한 편의 시에는 시인의 몇 년 혹은 그보다 더 오랜 시간의 삶이 담겨있다.
미당
당신과 내 나이를 더한 것보다/오래 산 나무가 있습니다
물난리가 났을 때/ 미륵의 머리만 떠내려 왔다는 땅에/ 어머니는 나의 태를 묻었습니다
하천이 범람하고 낙과가 무르고/ 내 안에서 자라던/ 큰 나무가 넘어가고 있습니다
기둥으로 세울 수 없는 시간은/ 누운 채 떠내려가기도 합니다/ 물에 쓸린 물풀이 한 방향으로 휘었습니다
당신이 누웠던 자리/ 베개 가운데가/ 움푹 들어간 것을 봅니다
어쩌면 당신은 다음번 가을을/ 손바닥으로 짚고 설지도 모릅니다
이 시는 시인이 나고 자란 충남 청양 미당마을의 이야기다. 큰 홍수로 떠내려 온 부처의 머리, 커다란 팽나무 그리고 병으로 누워계신 아버지와 희망을 이야기한다.
시에는 각자의 이야기가 담겨있다. 시는 시인 자신의 이야기지만 독자의 이야기가 되기도 한다.
작가는 시를 읽는다는 것은 어릴 적 나와 만나는 것이며 지난날의 나와 화해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또 과거와 현재 미래를 하나의 주머니에 담는 것, 그리워하는 것, 지금 이 순간을 살아가기 위한 것, 오로지 나만의 경험을 불러오는 것. 이 모든 것이 시와 마주하는 것이다.
문화체육관광부와 한국작가회의가 후원하는 작가와 함께하는 작은 서점 지원 사업의 다음 강연은 9월 22일(목) 오후 2시 수내동 코끼리서점에서 ‘서효인 시인 낭독회’로 진행된다.
참가비는 무료고 코끼리서점으로 예약 후 강연에 참여하면 된다.
코끼리서점(분당구 수내동 코끼리상가 지하1층) 031-711-0295 취재 나안근 기자 95nak@hanmail.net 저작권자 ⓒ 비전성남,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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