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제공: 김혜경>
한여름 더위가 기승을 부리는 8월, 숲을 산책하다 보면 도토리와 잎이 많이 매달린 참나무 가지가 발에 밟힐 정도로 널브러진 모습을 볼 수 있다.
누가 이렇게 참나무를 가지 채 부러뜨린 걸까? 가지 끝을 살펴보면 끝부분이 2~3센티미터 남짓 톱으로 정교하게 자른 듯한 모습이다. ‘도토리가위벌레’로 불리는 도토리거위벌레(Mechorisursulus)의 솜씨다.
도토리거위벌레는 딱정벌레목, 거위벌레과에 속하며, 성충의 몸길이는 약 9밀리미터에 불과한 작은 곤충이다. 주둥이가 길쭉한 것이 마치 거위를 닮았다고 해서 도토리거위벌레란 이름이 생겼다.
도토리거위벌레는 도토리가 달린 참나무, 주로 신갈나무를 골라가지 끝 도토리에 알을 낳고 그 끝을 작은 턱으로 수 시간에 걸쳐 갉고 갉아 땅으로 떨어뜨린다. 성충의 몸길이가 약 9밀리미터인 것을 감안하면 정교한 솜씨의 톱질 장인이다.
도토리 속 소중한 알이 땅에 떨어질 때 행여 다칠세라 널찍한 잎이 달린 신갈나무를 골라 알을 낳고 떨어뜨린다.
널찍한 이파리 덕분에 도토리 속 알은 충격을 받지 않고 무사히 땅에 떨어져 5일쯤 후알에서 깨어나 알을 싸고 있는 도토리를 먹고 자란다. 도토리 1개를 다 먹을 때쯤 도토리 깍지를 뚫고 나와 땅속으로 들어가 월동한다.
나무에 매달린 도토리에 알을 낳는다면, 알에서 깨어난 애벌레가 바람에 날려서 땅에 떨어져 죽을 수 있고, 자라서 나무줄기를 타고 땅으로 내려오려면 오랜 시간이 걸리고 그사이 새들의 눈에 띄어 먹이가 될 수 있기에 그 위험을 방지하기 위해 풋도토리에 알을 낳고 많은 시간 가지를 갉아 땅에 떨어뜨린다.
긴긴날 땅속에서 월동하며 기다리다 다시 땅 위에서 번데기로 한 달여를 보낸 후 풋도토리가 가장 살찐 8월 초쯤 성충이 돼 2~3주 동안 종족 보전을 위한 산란을 마치면서 도토리거위벌레는 생을 끝낸다.
자손을 남기기 위한 도토리거위벌레의 지혜가 참 대단하고 작은 턱으로 수 시간에 걸쳐 갉고 또 갉아 참나무를 자르는, 자식을 위한 도토리거위벌레의 행동에 마음이 숙연해진다.
요란한 울음소리의 매미가 여름 숲의 주인공인 줄 알지만 조용한 톱질의 명수, 도토리거위벌레 또한 후대를 남기기 위해 여름을 치열하게 보내는 여름 숲의 바쁜 일꾼이다.
취재 김기숙 기자 tokiwife@naver.com 저작권자 ⓒ 비전성남,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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