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가 그친 하늘에 노을이 내리고, SNS가 온통 무지개 목격 사진들로 뒤덮이던 늦여름 저녁. 2023년 첫 번째 심야책방이 분당 수내동 코끼리서점에서 열렸다.
8월 25일 오후 5시 정각이 되자, 분당의 20년 터줏대감 코끼리서점의 문선미 대표가 “여름 저녁. 낭독의 시간으로 심야책방을 열게 되어 기쁩니다. 모두에게 행복하고 의미 있는 시간이 되길 기대합니다”라는 환영의 말로 오늘의 주인공 김동숙 소설가를 소개했다.
김동숙 작가는 2011년 경상일보 신춘문예에 단편소설 <매미울음소리>로 당선되며 등단했다. 2019년 경기문화재단 문학창작집 출간지원에 소설집 <짙은 회색의 새 이름을 천천히>가 선정돼 출판하면서, 현재는 서현문화의집과 야탑동 서점 비북스에서 소설 낭독 및 합평 강의 등 활발한 활동을 전개 중이다.
이날은 출간 지원된 소설집 <짙은 회색의 새 이름을 천천히> 속 8개의 단편소설 중 하나를 독자들과 한 페이지씩 소리 내어 읽어가며 낭독하는 시간이었다.
간단한 소개를 마친 참석자들이 하나, 둘 시계방향으로 낭독을 시작하자 공간 전체가 문장 안으로 몰입하는 분위기다.
「한밤의 스메그 쇼룸」은 집안이 망하면서 미대 진학도 포기하고 결혼해서는 “애도 못 낳는 년”이라는 시아버지의 언어폭력과 남편의 무관심에 시달리며 부양을 이어가고 있는 화자의 이야기다.
취업한 스메그 쇼룸을 배경으로 브랜드에 취해 자기 옷에 모나크 버터플라이를 그리거나, 늦게까지 쇼룸에 남아 자신만의 ‘스웨그’를 위안 삼고, 첫사랑을 뺏어간 옛날 친구와의 건조한 대화를 통해 내면의 욕망과 현실에 대한 복수를 꿈꾼다.
소설가와 독자 모두가 순서대로 두 바퀴 남짓 윤독을 진행되자 소설이 결말을 맞는다.
낭독이 끝나자 다양한 질문과 소감들이 쏟아졌다.
소설집 전체의 화자가 여자인 작품이 많은 이유가 있는지, 스메그 쇼룸이라는 곳을 배경으로 삼은 이유는 무엇인지, 다른 등장인물인 시어머니와 남편의 명칭을 왜 노인과 3인칭의 객관적인 이름으로 사용했는지, 모나코 버터플라이는 어떤 상징인지 등 자신들이 받은 소설의 감정과 은유적인 느낌들이 활발한 북토크로 흘러간다.
야탑동에서 온 주유진 씨가 “소설 속의 세 가지 하얀 가루인 설탕과 수면제와 비소는 주인공이 무엇을 섞었을 것 같은 상상을 자극한다. 이런 의도가 있는 열린 결말로 해석해도 되는가?”라는 질문을 하자, 저자는 “서로 다른 하얀 가루는 독자들에게 추측하고 해석할 거리를 주기 위한 장치로 작업을 했다”는 설명을 덧붙였다.
김동숙 작가는 마지막으로 소설을 쓰는 이유에 대해 “너무 힘들거나 속상하거나 슬플 때 소설이 있기에 견딜 수 있다는 생각을 자주 한다. 가장 큰 기쁨과 슬픔을 투영해 소설로 녹여낼 수 있다는 것이 인생의 큰 위안이 된다”는 이야기로 심야책방을 마쳤다.
문화체육관광부와 한국서점조합연합회가 후원하는 심야책방은 이번을 시작으로 9월 22일(금)에 2회차, 10월 27일(금) 3회차, 11월 24일(금) 4회차까지 차례로 진행될 예정이다.
풀이 울며 돌아서고 모기 입도 비뚤어진다는 처서가 지나고 사색하기 좋은 계절이다. 지적 호기심도 충족하고 새로운 경험도 쌓을 수 있는 심야책방에서 즐거운 시간 가져보면 어떨까.
코끼리서점 주소: 성남시 분당구 내정로166번길, 지하 1층(수내동) 예약: 031-711-0295(※ 모든 강연은 전화예약 필수)
취재 양시원 기자 seew2001@naver.com 저작권자 ⓒ 비전성남,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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