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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황톳길을 걷다

3월 15일 재개장한 구미동과 중앙공원 맨발황톳길

  • 비전성남 | 기사입력 2024/03/16 [13:47] | 본문듣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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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치는 바람에 봄기운이 완연히 묻어나는 요즘이다. 겨우내 쉬고 있던 황톳길 6곳이 재단장하고 지난 15일 다시 문을 열었다. 그중 성남시민의 안락한 휴식처가 돼 주는 중앙공원과 구미동 일대 탄천변에 위치한 황톳길을 다녀왔다.

 

중앙공원 맨발 황톳길

 

▲ 15일 재개장한 중앙공원 황톳길  © 비전성남

 

▲ 맨발황톳길 이용시 주의사항  © 비전성남

 

▲ 부드러운 황토의 질감을 즐기는 시민들  © 비전성남


기자가 중앙공원 황톳길을 찾은 건 내리쬐는 햇빛이 따뜻한 기분 좋은 오후였다. 급한 발걸음으로 공원에 들어섰는데 산책하는 사람들과 어울려 자연스럽게 걸음이 느려진다.

 

어우~ 시원해.”

나이가 지긋한 중년 남자가 황톳길 위로 첫발을 내디디며 큰 소리를 낸다. 아직 겨울 기운이 다 가시지 않은 흙 위에 맨발이 차가웠나 보다. 천천히 걸어가는 남자가 곧 산책객들 사이로 멀어진다.

 

신발 벗고 들어오세요.”

 

사진을 찍다 고개를 들어보니 선한 인상의 아주머니가 말을 걸어온다. 겨울에도 황톳길을 찾아다녔다는 이분은 여기는 직접 걸어봐야 안다며 연신 들어오기를 권한다. 한참을 이야기하다가 기자가 사진을 찍어달라 넌지시 권하니 웃으며 손사래를 친다.

 

▲ 황토의 질감을 느끼며 느긋하게 즐기는 것이 황톳길의 묘미다  © 비전성남

 

▲ 올 봄부터 중앙공원 황톳길 세족장에서는 온수를 사용할 수 있다  © 비전성남

 

▲ 중앙공원 황톳길 세족장은 온수가 나온다  © 비전성남

 

길의 끝에 있는 황토장과 황토를 뭉친 알갱이들이 있는 지압장에는 늘 사람들이 많다. 질축한 황토가 주는 간지러운 촉감이 좋아서 그런듯하다.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 사람들에게 다가가 말을 걸었다.


▲ 황토에 찍힌 선명한 발자국 누구의 발자국일까  © 비전성남 

 

▲ 사진을 요청하니 웃으며 발만 찍어달라는 시민들  © 비전성남 

 

친구끼리 온 것이 아니라 황톳길에서 만나 친구가 됐다고 한다. 신발을 벗는 황톳길은 사람들 사이의 경계심도 벗겨버리는 모양이다.

 

또 한 번 사진을 권하니 황토가 거하게 묻어 있는 발만 찍어 달라며 까르르 웃음을 터트리는 모습이 나이와 상관없이 천진하다.

 

▲ 허리협착증으로 고생하다가 산책과 황톳길을 걷고 많이 좋아졌다는 최순조 씨  © 비전성남

 

세 번째 시도는 성공이다. 백현마을에 사는 최순조 씨는 허리협착증이 심해서 황톳길을 꾸준히 걷는 중인데 작년에는 한 번 왕복하기도 힘들었는데 지금은 많이 좋아졌다면서 흔쾌히 사진을 찍어주었다.

 

구미동 맨발 황톳길

 

▲ 15일 재개장한 구미동 황톳길  © 비전성남

 

▲ 곧 꽃이 만개해 터널을 이룰 구미동 황톳길  © 비전성남

 

▲ 구미동 황톳길에 봄을 알리는 산수유  © 비전성남

 

소기의 목적을 달성했으니 이제 구미동 황톳길로 향한다. 시원한 조망이 일품인 탄천변에 위치한 황톳길은 산책로와 나란히 일자로 나 있다. 봄이면 길 위로 드리워지는 산수유꽃과 벚꽃이 아주 일품이다. 성미 급한 산수유는 이미 노랗게 물이 올라 곧 꽃망울을 터트릴 기세다.


▲ 산수유가 피고 있어 더 화사한 구미동 황톳길  © 비전성남

 

▲ 굳은 황토를 다시 부드럽게 해주기 위해 관리자들이 물을 뿌리고 있다  © 비전성남

 

▲ 황톳길을 관리하고 있는 녹지과 양묘장 방석호 씨 © 비전성남

 

구미동 황톳길에 도착하니 관리자들이 물을 뿌리는 작업이 한창이었다.

 

길을 평평하게 하고 낙엽을 치우고, 황토도 보충해 주지요. 또 황토가 굳지 않게 지금처럼 물도 뿌려주고 시민들이 이용하는 세족장도 청소합니다.”

 

녹지과 양묘장 방석호 씨가 말한다. 운영시간 내내 관리가 이뤄지는 덕분에 시민들은 늘 황톳길을 걸을 수 있다.

 

▲ 황톳길에서 만나 친구가 됐다는 한부남(오른쪽) 씨와 친구  © 비전성남

 

여기에서도 같이 길을 걷다가 친구가 된 사람들을 만날 수 있었다. 황톳길이 다시 열리기만을 기다렸다는 한부남(구미동) 씨와 친구는 사람을 사귀는 데에 나이는 별로 중요하지 않다고 한다.

 

단지 지금 5번을 왕복했다며 길이 너무 짧아 아쉽다길래 올여름에는 400여 미터가 더 연장될 것이라는 반가운 소식을 전해주었다. 친구와 도란도란 이야기 나누며 더 긴 황톳길을 걸으시길 바라본다.

 

▲ 구미동 황톳길은 올 7월까지 430미터를 연장할 예정이다  © 비전성남

 

▲ 이사간 후 황톳길에서 우연히 다시 만났다는 고영순, 신금순 씨  © 비전성남

 

▲ 구미동 세족장  © 비전성남

 

황톳길이 주는 인연은 이게 다가 아니다. 황톳길 옆 흔들의자에 정답게 앉은 고영순(구미동) 씨와 신금순(동천동) 씨는 금순 씨가 이사를 간 후로 오래 만나지 못하다가 오늘 이곳에서 우연히 만났다고 한다. 참 신기한 일이다.

 

기자가 황톳길을 찾은 건 15일 오후 한때인데 참 많은 이야기를 들었다. 우리를 급하게 걷게 만들던 갑옷 같은 신발을 벗어놓고 맨발로 땅 위에 서기 때문일까?

 

▲ 구미동 황톳길은 인근 용인시에서도 많이 찾아온다  © 비전성남

 

▲ 완상하며 걷는 황톳길은 느린길이다  © 비전성남

 

▲ 탄천을 바라보며 휴식하기 좋은 구미동 황톳길 쉼터  © 비전성남

 

▲ 황톳길 내 반려견은 동반할 수 없다  © 비전성남

 

짧은 길 위에서 우리가 잊고 사는 건강과 여유와 사람 간의 인연을 만난다. 스스럼없이 어울리고 바쁜 일상이 잠시 쉬어가는 도심 속의 황톳길은 거창한 계획을 세워 굳이 멀리 떠나지 않아도 되는 최고의 사치가 아닐까 싶다.

 

취재 서동미 기자 ebu73@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