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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강 100세 - 법보다 중요한 것

  • 관리자 | 기사입력 2012/01/19 [13:32] | 본문듣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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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학교 3학년인 철호는 어느 날부터 쉽게 짜증을 내고, 화를 내며 동생을 심하게 때리기 시작했다. 
또한 학교나 학원에서 자신보다 키가 작거나 힘이 약한 친구를 괴롭히기도 했다. 
철호는 평소 조용한 성격으로, 그동안 아무런 문제를 일으킨 적이 없었다. 
상담실에 온 철호는 중학교 입학 후 선배들로부터 금품을 요구하는 전화를 지속적으로 받아왔고, 돈을 주지 않으면 교실에 찾아와 괴롭히고 때리기도 한다는 이야기를 어렵게 꺼내놓았다.



학교폭력, 피해자·가해자 모두 병들어

최근 학교폭력의 희생자가 된 청소년의 비극적인 죽음을 마주하며, 온 나라가 학교폭력의 이야기로 들끓고 있다. 

아이들과 관련된 모든 사람들이 테이블에 둘러 앉아 현 상황을 개탄하고, 저마다의 대책을 내놓느라 고심한다.
 
항상 누군가의 희생이 있은 뒤에야 경각심이 생기고 변화가 뒤따르는 것은 너무나 미안하고 어리석은 일이다.

하지만 이번 일을 아픈 교훈 삼아 학교를 조금 더 평화롭고 즐거운 곳으로 만들기 위한 정책과 장기적인 대책이 세워진다면, 생명을 내던진 청소년의 죽음이 적어도 헛된 것으로 잊히지는 않을 것이다.

학교폭력은 간단한 현상이 아니다. 그 안에는 피해자와 가해자, 직접 가담하지는 않지만 폭력의 악순환을 무기력하게 바라보고 있는 다수의 제3자가 존재한다. 

지금은 피해자들에게 모든 주의가 집중되고 있지만, 분명한 것은 양쪽 모두 병들어 있다는 사실이다.

알려진 대로, 피해 학생들은 만성적인 폭력의 노출에 의해 우울·불안·외상후스트레스증후군과 같은 정신병리에 시달린다. 어떤 경우는 피해 학생 자신이 다소 취약한 면을 가지고 있어 쉽게 폭력의 타깃이 되기도 한다.

하지만 상대적으로 간과되고 있는 가해 학생 역시 ADHD나 우울증·충동조절장애같이, 치료의 대상이 되는 병리를 갖고 있는 경우가 많다. 

또한 철호의 경우처럼 희생자였던 아이가 다른 상황에서 가해자가 되기도 하고, 가해자였던 학생이 더 강한 상대에게는 피해자가 되기도 하는 등 그 둘을 겸하는 경우도 많이 본다.

소통 단절, 소외 등이 더 문제

하지만 아무리 당사자 학생들을 치료하고, 교육하고, 심지어 방지를 위한 법을 만들어도, 학교폭력이 과연 얼마나 많이 줄어들지, 나아가 폭력이 없어진다고 하더라도 아이들이 과연 얼마나 더 많이 행복해지고 학교를 사랑하게 될지는 아직 의문이다.

약자와 강자의 공존을 허락하지 않는 무한경쟁주의, 다름을 인정하지 않는 자기중심적인 생각, 돈 혹은 권력으로 타인을 지배할 수 있다는 믿음, 사람 사이에 단절된 소통 혹은 소외 같은 문제들을 학교폭력이라는 현상 안에서 읽을 수 있다. 

그래서 그것은 더 거대한 담론인 것처럼 느껴진다.

아마도 학교폭력은 우리 사회가 갖고 있는 극심한 무력감과 피로감이 투영된 거울 같은 현상의 하나는 아닐까. 먼저 치료해야 할 것은 어쩌면 아이들이 아니라, 우리 모두가 갖고 있는 가치관, 그리고 타인과 공존하는 방식일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