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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남시 청계산 자락 아래 금토동에는 정일당(靜一堂) 강씨의 묘역과 사당이 있다. 이곳은 현재 성남시 향토유산 제1호로 지정돼 있다.
정일당은 2005년 7월 문화관광부에서 이달의 인물로 선정되기도 했다. 오랜 시간의 공백을 뛰어넘어 정일당은 그렇게 우리 곁에 무심히 자리하고 또 음미되고 있다. 그녀의 삶과 사유는 어떠했을까?
하마터면 정일당(靜一堂)은 이야기로만 묻힐 뻔했다. 사임당(師任堂)과 윤지당(允摯堂) 등 다른 여성들의 시문과 저작은 꽤 남아 있는 것에 비해, 정일당의 저작은 정작 별로 남아 있지 않기 때문이다. 정일당의 저작은 30여 권에 이른다고 전해진다. 다만, 원래부터 몸이 허약해서 평생 고생했던 정일당이 큰 병으로 사흘 동안 기절했다 깨어난 적이 있었는데, 이때 평생 저술한 수십 권의 책이 잿더미가 돼 유실되고 말았다고 한다. 그나마 정일당의 남은 저작들이 『정일당유고』로 한데 묶일 수 있었던 것은 남편 윤광연(尹光演)의 공이 컸다.
윤광연은 유고의 서문을 부탁하면서, 자신이 학문의 길로 나아가 큰 허물없이 행동거지를 할 수 있었던 것을 아내인 정일당의 덕이라고 했다. 형편이 어려운 집안에 시집와서 학문의 끈을 놓지 않도록 자신을 이끌어준 아내에게 존경과 함께 애틋한 마음을 드러낸 것이다.
사람들은 정일당이 남편 윤광연의 학업을 진작시키고, 정작 자신 또한 어렵사리 학문의 길을 걸었던 모습을 이렇게 추모했다.
“남편은 수양한 선비로, 평생토록 부인을 스승으로 삼았네 책상은 부엌에 있었고, 경전은 식자재와 섞여 있었네” - 『정일당유고』(이영춘 역, 挽章 7)
정일당은 가난한 집안에 태어나, 마찬가지로 형편이 어려운 집안에 와서도 꿋꿋하게 살림을 꾸려나갔다. 삯바느질로 생계를 꾸려가면서 남편의 글 읽는 소리를 들어가며 정일당 자신 또한 학문에 뜻을 두었다. 정일당은 학문적 자질이 매우 뛰어나 경전을 곧장 암송했고, 그 의미도 깊이 깨닫는 수준이 돼 어느새 남편과 강론하며, 성리학적 사유의 깊이를 체득해 나갔다.
정일당은 공부에 대한 의지가 매우 강했다. 그래서 그녀는 “저는 일개 부인으로서 몸은 규중(閨中)에 매여 있고 배운 것도 아는 것도 없으나, 바느질하고 청소하는 중에도 옛 경서와 고전을 읽으면서 그 이치를 궁구하고 옛사람들의 행실을 본받아 선현들의 경지에 이르기를 작정하고 있습니다”라고 다짐했다.
그렇게 정일당은 당시 여성을 제약하는 사상의 굴레를 넘어섰고, 죽기 사흘 전까지도 증자(曾子)처럼 성현이 되겠다는 각오를 이루지 못함을 부끄러워했다.
정일당이 평생 각오했던 학문은, 성리학적 의미에서 성인(聖人)을 지향하는 공부(工夫)다. 그 공부는 사서삼경의 경전을 외고, 의미를 풀이하고 이해하는 것에 그치지 않는다. 인간으로서 삶의 의미를 깊이 음미하고, 삶에서 실현하는 것에까지 나아간다.
‘정일(靜一)’이라는 당호는 그러한 삶의 태도를 잘 담아내고 있다. 마음은 성정을 통어하는데(心統性情), 그 마음을 경건하게 유지해야(敬) 이상적인 인격의 삶이라는 먼 길을 걸어낼 수 있다(『정일당유고』 <主敬>).
경건함을 유지하는 것이 성리학의 핵심적인 공부인데, 그 경지에 이르는 방법이 마음을 고요하고 맑게, 그리고 하나로 집중하는 것이다. 몇 글자 남아 있지 않은, 정갈하고 군더더기 없는 필체에서도 그녀의 성정이 잘 드러난다.
정일당은 공부의 과정에서 어느 날 문득 한 깨달음을 ‘정원의 잡초를 뽑으며’라는 시에서 표현했다.
작은 호미로 우거진 잡초를 뽑는데, 시원스레 소나기가 먼지를 적시네 문득 주렴계 선생의 뜻을 알 것 같으니, 산골 풀밭에 옛길이 열리네 - 『정일당유고』(이영춘 역, 除庭草)
정일당이 정원에서 우거진 잡초를 뽑는데, 시원스레 소나기가 먼지를 적셔 주변이 청명해진 상황에서 주렴계(周濂溪)의 뜻을 깨달았다는 내용이다. 주렴계는 북송오자(北宋五子)의 한 사람으로 주희의 학문 정립에 큰 영향을 주었다.
학문적 성취에서 품어져 나오는 주렴계의 인격적 완성을 표현하는 용어가 ‘광풍제월(光風霽月)’이다. 이 용어는 ‘마음이 시원하고 깨끗함이 마치 비 갠 뒤의 맑은 바람과 달과 같다(胸懷灑落, 光風霽月)’고 표현한 구절에서 유래하는데, ‘비 갠 뒤의 맑은 바람과 달’처럼 ‘청명하고 상쾌함’으로 공부를 통한 성리학적 인격의 완성을 그려내고 있다.
이처럼 정일당은 공부를 통한 인간의 지향을 깊이 음미하고 실천하고자 했다. 그런 의미에서 정일당을 조선의 여성 성리학자라고 지칭할 수 있다. 또한 성리학이 지난한 공부를 통해 지향하는 완성된 인간의 모습은 지금 우리에게도 숙고할 의미가 있다.
그런 점에서 인간에 대한 숙고는 시대를 초월한 보편적인 사유다. 그래서 정일당을 성리학자로만 규정하는 것에 더 나아가, 조선의 여성 철학자라고 불러도 무방하지 않을까 싶다.
특별기고 성광동 한국학중앙연구원 출판문화부 책임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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