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디오헤드의 음악 절규하듯 다가와 가짜 사랑보다 더 나쁜 배제 영국 5인조 록 밴드 라디오헤드의 음악이 새삼 뭉클하게 다가오는 이즈음입니다. 한동안 듣지 않았습니다. 몽환적이고도 어두운 음색이 가슴을 짓눌러서 애써 음반을 잊었습니다. 그러나 어찌된 일인지 올 여름부터는 잘 들어옵니다. 마음에 착착감깁니다. 찜통더위 때문만은 아닙니다. 굳이 이유를 찾자면 아마 올림픽 경기중계방송 때문일 겁니다. 방송 진행자들은 대부분이 애국자였습니다. 그러다보니 상대 선수를 폄하하거나 실수하기를 바라는 멘트 일쑤였습니다. 채널을 돌려도 마찬가지였습니다. 반전에 반전을 거듭하는 역동적인 경기장면을 놓칠 수는 없어서 볼륨을 제로로 놓고 보았습니다. 경기가 끝나자 씁쓸해졌습니다. 한국 선수가 승리했지만 말입니다. 그래서 라디오헤드의 음악을 들었습니다. 침울해서 피했던 ‘Fake plastic trees’가 애틋하게 들어왔습니다. 인간문명에 대한 회의적인 시선을 특유의 얼터너티브 록으로 체화한 라디오헤드의 음악은 참 어둡습니다. 두 번째 음반 <The Bends>(1995년)의 대표곡인 Fake plastic trees는 더욱 도드라집니다. 가사를 보면 참담해집니다. ‘my fake plastic love / but I can’t help the feeling’(플라스틱으로 만들어진 나의 가짜 사랑이여 / 하지만 나는 이 생각에서 도저히벗어날 수가 없어) 이 음악이 자연스럽게 다가온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닙니다. 무의식적으로 우리 선수 편을 극단적으로 든 방송진행자의 멘트를 ‘가짜 사랑’으로 보았기 때문입니다. 사랑이 아닌,가짜 사랑. 어찌 보면 상대 선수를 비하하거나 실수하기를 바라는 마음은 가짜 사랑보다 더 나쁜 배제일 것입니다. 언제부터인가 인간에 대한 배제가 우리 사회의 근저에 자리 잡아똬리를 틀고 있습니다. 그렇지 않고서는 일부 방송 진행자들이 자연스럽게 그런 멘트를 할 수 없을 것입니다. 경쟁지상주의가 빚은 당연한 귀결일지 모릅니다. 인간에 의한 인간의 배제. 이런 문화가 중심이라면 스산하기 그지없는 라디오 헤드의 음악은 더욱 가슴을 파고들 것입니다. ‘그 중심, 중심 아냐!’ 절규하듯이 말입니다. 이건행 / 보이차 전문점 ‘티마켓’ 대표. 한양대 국문과를 나와 일간지와 시사주간지 등에서 미술·사건·증권기자로 일했다. 저서로는 임권택 감독의 <창>의원작이 된 장편소설 <세상 끝에 선 여자>가 있다. 저작권자 ⓒ 비전성남,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
많이 본 기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