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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리자베스 키스, 금강산의 구룡폭포와 소나무를 그리다

[특별기고] 신정수 한국학중앙연구원 한국학대학원 교수

  • 비전성남 | 기사입력 2026/03/27 [14:14] | 본문듣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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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코틀랜드 출신의 화가 엘리자베스 키스(Elizabeth Keith, 1887~1956)1915년 일본을 방문하면서 아시아와 인연을 맺기 시작한다. 언니 엘스펫(Elspet Keith Robertson Scott, 1875~1956)의 초청으로 당초 두 달 일정으로 왔으나 이후 6년 이상 머물며 일본·한국·중국의 여러 지역들을 여행하면서 창작 활동을 했다이 글은 외국인의 시선을 통해 한국의 자연과 문화를 다시 바라보는 기회를 제공한다.

 

한국의 경우, 언니와 함께 3.1운동이 일어난 직후인 1919328일에 방문했다. 언니가 일본으로 돌아간 뒤에도 키스는 계속 한국에 남아 20세기 초 당시 한국의 풍속과 풍경을 주제로 많은 작품들을 남겼다한국을 소재로 한 작품은 대략 30여 점인데, 이 중 필자가 가장 좋아하는 작품은 키스가 1922년 금강산을 여행할 때 그린 구룡폭포다. 작품을 보기 전에 당시 구룡폭포가 어떤 모습이었는지 사진으로 먼저 살펴보자.

 

[그림 1] 일제강점기 발행된 금강산 엽서

▲ 출처: 노형석. 길이 180cm, 말총 수백올…금강산 구룡폭포 거대 암벽글씨 ‘미륵불’ 희르륵, 한겨레 신문 2020-08-14)    

 

https://www.hani.co.kr/arti/culture/culture_general/957734.html

 

이 사진은 조선총독부철도국(朝鮮総督府鉄道局)에서 금강산 관광을 홍보할 목적으로 제작한 우편엽서의 앞면이다. 상단에 朝鮮 金剛山 外金剛 九龍淵大瀑이 있고 이어서 영문 설명 “Mount, Kongo (outside), Korea”가 나온다. 금강을 일본어 발음으로 적어서 자칫 아프리카의 콩고로 오해하기 쉽다.

 

사진에서 폭포수는 절벽을 따라 물안개를 이루며 내려와 구룡연(九龍淵, 깊이 13m 정도)에 떨어졌다가 이후 천천히 아래로 유유히 흐르고 있다. 오늘날 성남시민들도 쉽게 접하기 어려운 금강산 풍경을, 한 서양 화가의 시선으로 만나볼 수 있다.

 

구룡폭포는 빠른 물살로 깊게 패인 벼랑 끝에서 절구 모양으로 움푹하게 만들어진 웅덩이까지 전체가 하나의 큰 화강암 덩어리로 되어 있다. 폭포 옆 깎아지른 암벽에 새겨진 미륵불(彌勒佛) 세 글자는 당대 유명한 화가였던 김규진(金圭鎭, 1868~1933)의 작품이다.

 

1919년 김규진은 금강산 신계사의 임석두 스님과 현지 불자들의 부탁으로 큰 기와집 세 채 값을 받고 이 글씨를 써주었다고 한다. 이로부터 3년 뒤, 키스는 구룡폭포를 여행하고 다음과 같은 목판화를 완성했다.

 

[그림 2] Nine Dragon Pool, Diamond Mountains 

▲ 크기: 36.2 × 17.5 cm/ 소장: Jordan Schnitzer Museum of Art, University of Oregon, 1922년, 목판화, 종이에 먹과 채색  

 

https://www.metmuseum.org/perspectives/diamond-mountains-curator-conversation

 

엽서 사진과 키스의 작품을 비교해 보면, 전체적인 구도는 유사하지만 키스가 그린 폭포는 실제보다 직선으로 표현되어 덜 역동적이다. 키스는 폭포보다 오히려 소나무와 같은 주변 경관을 부각시키고 있다. 특히 여러 마리의 용들을 그려 넣어서 독특한 분위기를 연출하였다. 폭포 위에 한 마리, 폭포 아래 웅덩이에 두 마리, 폭포 양옆에 각 3마리씩 총 9마리다.

 

키스의 작품들은 대부분 매우 사실적으로 그려졌는데, 이 그림은 예외적으로 환상적인 요소가 가미되어 있다. 1921년에 그린 또 다른 금강산 그림 'The Diamond Mts. Korea, A Fantasy'에서도 하늘에서 천상의 신들이 구름을 타고 내려오는 장면이 상단에 나온다. 키스는 금강산에서 깊은 감동을 받아서 기존의 자기 스타일에서 벗어나 파격을 시도한 것이다.

 

키스는 구룡폭포의 명칭을 염두에 두면서 용을 그려 넣었을 것이다. 구룡폭포라는 이름은 아홉 마리의 용이 살고 있다는 데서 유래하며, 이에 대한 전설도 여러 가지다. 구룡이 사월 초파일에 하늘에서 내려와 웅덩이에서 목욕하고 올라간다는 이야기도 있고, 인도에서 온 53명의 스님들이 소란을 피우는 아홉 마리 용을 여기로 내쫓고 유점사를 세웠다는 이야기도 있다.

 

이러한 전설들은 이전에 금강산을 방문한 이사벨라 비숍(1898)과 선교사 F.S. 밀러(1894) 등 서양인들에게도 잘 알려져 있었다. 키스도 이러한 전설에 흥미를 느끼고 이 이야기를 창의적으로 작품에 반영했을 것이다

 

그림 속에서 하얀 눈을 동그랗게 뜬 용들은 전혀 무섭지 않고 오히려 귀여운 모습이다. 두 마리는 웅덩이에서 자맥질을 하며 천진난만하게 놀고 있고, 절벽 양옆에 붙어있는 용들은 소나무에 숨어 있거나 기어 나오고 있다. 푸른 등가죽으로 덥힌 용들은 푸른 소나무와 유사해서 쉽게 구별되지 않는다오른쪽 절벽 중앙에 있는 용은 얼굴과 상반신만 보이고 아래로 소나무만 있어서 마치 소나무가 용으로 변해 가는 듯한 인상을 준다. 이것이 키스의 의도였는지 모르겠지만, 옛날부터 소나무는 용의 형상에 자주 비유되어 왔다.

 

소나무 껍질은 깊게 골이 패여 있고, 독특하게 갈라진 표피는 비늘처럼 보인다. 이러한 거친 질감과 모양 때문에 소나무 껍질을 용린(龍鱗)이라 불렀다. 솔잎 또한 바늘처럼 가늘고 뾰족해서 창염수(蒼髥樹)”, 푸른 수염을 가진 나무라고 했다. 이 둘을 합쳐 적갑창염(赤甲蒼髥)”이라고 하기도 한다.

 

키스는 엽서에서 보이는 실제 풍경보다 소나무를 훨씬 더 많이 그렸다. 사진에는 소나무 등 침엽수들과 함께 단풍이 든 낙엽수들도 많이 보이는데 키스의 그림에는 폭포 뒤쪽의 원경에서부터 앞쪽 웅덩이까지 거의 모두가 소나무다.

 

소나무를 그린 방식 또한 흥미롭다. 절벽 오른편 가운데에 있는 소나무는 엽서 사진 속 소나무와 같은 위치에 있어, 키스가 실제 나무를 염두에 두고 그렸을 가능성이 높다. 나뭇가지들이 구름 모양으로 잘 다듬어져 있어서 마치 일본 정원의 소나무를 연상시킨다.

 

반면 절벽 왼편 상단의 소나무는 사진에서는 나타나지 않는다. 실제로 폭포에 존재하지 않고 키스가 상상력을 발휘해 추가했을 가능성도 있다. 이 소나무는 오른 편의 정원 소나무와는 달리 구불구불한 수형을 지녀 높은 산에 서식하는 소나무의 역동적인 모습이다.

 

키스는 금강산을 일본풍으로 그렸다는 지적을 받기도 하지만 이렇게 뒤틀린 채 하늘에 매달려 있는 소나무를 보면 한국의 자연과 소나무에 깊은 애정을 가지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키스 이전에 금강산을 방문한 이사벨라 비숍이 난장이 같고 뒤틀린 소나무(dwarfed and distorted pines)”라고 한 것과도 대조가 된다.

 

1920년 한라산과 지리산의 침엽수를 조사한 미국의 식물학자 윌슨(Ernest Henry Wilson, 1876-1930)도 원통형으로 균형이 잘 잡힌 구상나무(Abies koreana Wils)를 좋아하고 오래된 나무에 대해서는 비쩍 마르고 예쁘지 않다(Old trees are scrawny and not attractive.)”라고만 했다. 이 점에서 키스는 높고 험한 산에서 세찬 바람을 맞아 구불구불 자라는 노송의 아름다움을 포착한 최초의 서양인이라고 할 수 있다.

 

 

특별기고 신정수

한국학중앙연구원 한국학대학원 고전번역학 전공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