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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남을 추억하다(5) 사라져 가는 것들에 대한 아쉬움, 그때를 아시나요?

  • 관리자 | 기사입력 2013/06/23 [22:46] | 본문듣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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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가 온다. 이런 날이면 부침이 생각이 날 법하지만 연자 아짐(전라도사투리)에게는 다른 추억이 있다.

둥기 둥기 두둥기~ 어허야 디야~~ “성님 굿 보러와. 나가 꽁짜 표 줄팅께.” 이웃 아낙의 제안에 들썩이는 궁둥이를 잠재우려면 저녁을 빨리 먹어야 했던 나연자(80‧수정구 태평동) 씨는 물을 길으러 집 앞 개천으로 양동이와 바가지를 들고 나갔다. 더럽지 않았냐고 물었더니 “그때는 깨끗했어. 바닥을 긁어 파고 돌멩이를 모아 둥그렇게 쌓으면 그 물로 밥 하고 빨래하고 목욕도 했지. 비가 오면 걱정이었어” 한다.

지금은 그 흔적도 찾을 수 없는 개천들이 이주 초기에는 물이 깨끗해 이주민들의 식수로 사용됐다고 한다. 

개천에서 놀다가 물 길러 온 아낙에게 때론 물바가지 세례를 받곤 했을 강지은(46‧수진동) 씨도 “성남제2초등학교(현 수정초등학교)에 다녔는데 학교에 가려면 개울을 건너야 했다. 징검다리를 폴짝폴짝 뛰어서 건너는데 비라도 오면 멀리 돌아가야만 했다”며 당시를 회상한다.

“우리는 용산에서 왔는데, 장 보려면 천호동으로 나가야 했어. 논둑길같이 좁은 도로로 덜커덩거리는 버스를 타고 오려면 고역이었지. 콩나물 대가리마냥 빽빽이 들어차서 꼼짝도 못하고 차렷 자세로 와야 했다니까” 하며 더 재미난 일화도 많다고 나연자 씨는 말한다.

1968년부터 서울 용산구 이촌동 철거민과 용두동 판잣집 화재 이재민 등이 이곳 성남에 살기 시작할 당시부터 식수로 사용했을 개천들은 
▲ 독정천(현 수정로, 현 산성역부근에서 태평역을 지나 탄천으로 유입, 1985년 복개) 
▲ 단대천(현 중앙로, 남한산성 유원지에서 모란역주변을 거쳐 탄천으로 유입, 하천 밑으로 지하철 8호선건설, 1998년 복개)
▲ 대원천(현 공단로, 상대원에서 하대원을 거쳐 모란시장을 지나 탄천으로 유입, 1997년 복개)이다.

개천은 성남시 인구가 많아지고 공단이 들어서자 오·폐수 유입으로 더러워져 제 기능을 상실했고, 인구밀집과 늘어나는 교통량 때문에 모두 복개를 하게 된다.

지금은 본시가지 교통의 중추적 역할을 담당하는 수정·중앙·공단로가 모두 개천 위를 복개해 생겨난 도로라는 것을 우리 아이들은 알까? 개천은 그렇게 없어서는 안 되는, 현재 성남 본시가지 교통의 젖줄이됐다.
박경희 기자 pkh2234@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