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 후 부산과 서울에서 의상실을 한 그녀는 시로 승격한 다음해인 74년 성남으로 터전을 옮겨 의상 작품을 만들어 내는 데 열정을 쏟았다. 김숙자(77·수정구 신흥1동) 원장은 옷에 대한 관심과 패션이 유행하던 시대, ‘양재협회 성남지부’를 만들었고 중앙회 이사로 활동하면서 수많은 패션쇼를 열었다. 또한 기술기능대회 심사위원으로 참여하고 책자에 작품을 발표하기도 했다. “옷 주문량이 많을 땐 밤을 새우고 바늘에 손을 찔려 아리고 아파도 좋았다”는 그녀는 식구 같은 20여 명의 직원들과 함께 작업하던 시절이 힘은 들어도 신나고 행복한 시절이었다고 회고했다. “지금은 의상실을 찾아보기 어려워 아쉽기도 하지만 나이가 들수록 더 옷에 대한 자부심이 생겨 일하는 시간이 행복하다”는 김 원장은 IMF 이후 혼자 의상실을 운영하고 있다. 지금은 신용카드로 할부를 하지만 그 당시엔 다달이 갚는 월부가 있었고 월부로 옷을 맞추어 입는 사람도 많았다고 한다. 그녀의 정신과 손길이 밴 수많은 의상 작품들, 모두 소중하고 즐거운 추억이 담겼지만 유독 그녀를 즐겁고 행복하게 하는 의상 작품이 있다. “수정구와 중원구 어머니 합창단, 시니어합창단과 시립합창단의 단복”이라며 “한 사람 한 사람 심혈을 기울여 치수를 재고 가봉을 하고 옷을 완성했던 일은 내 일생의 잊을 수 없는 일이며 작품들” 이라고 했다. 그 인연으로 합창단의 공연이 있을 때는 꼭 김 원장을 초청했다. “옷을 만들었던 과정을 생각하면서 아름다운 노래를 합창하는 그들을 바라보는데 더할 수 없이 행복했다”는 김 원장. 옷을 만들어 온 지 어느새 57년이라는 세월이 훌쩍 흘렀다. 옷을 만드는 일 외에도 분당 로타리 클럽에서 ‘초아의 봉사’를 하는 김 원장이다. 8남매를 키워낸 99세의 친정어머니는 김 원장의 세 아이도 키워냈다. 그녀가 그동안 많은 표창과 감사패와 공로패를 받을 수 있었던 것은 그런 어머니가 있었기 때문이다. 지난 2007년 ‘대한중앙양재협회’ 회원들에게 받은 공로패는 “창립 당시부터 50년이 넘도록 양재회 육성 발전을 위해 헌신한 공로를 인정받은 것이어서 더욱 기뻤다”고 했다. 그녀의 옷을 입어 주는 사람들이 있어 감사하고 의상실 이름처럼 “옷 한 벌에 깃든 내 정성과 마음을 잊지 않아 준다면 그보다 더 행복한 일은 없다” 는 김 원장이 항상 건강하길 바란다. 저작권자 ⓒ 비전성남,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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