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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속의 여왕, 자작나무 이야기

  • 비전성남 | 기사입력 2014/01/27 [11:31] | 본문듣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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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작나무    © 김기숙

자작나무는 태웠을 때 자작자작 소리가 난다 해서 붙은 이름으로 수피가 흰빛을 내고옆으로 얇게 종이처럼 벗겨진다. 눈처럼 하얀 껍질과 쭉 뻗은 큰 키로 인해 자작나무는 서양에서 ‘숲속의 여왕’으로 불리기도 한다. 잘 썩지 않으며 벌레가 먹지 않는 데다 자작나무껍질은 흰빛의 기름기 있는 밀랍가루 같은 것으로 덮여 있어 습기에 강하다.

경주 대릉원 안엔 동서 80미터, 남북 120미터, 높이 23미터에 달하는 거대고분이 있다.주인을 알 수 없었기에 무덤은 '총'으로 분류되고(무덤의 주인이 왕이면 '릉'으로 분류) 황남동에 위치한 아파트 8층 높이의 이 거대고분은 황남대총이라 불렸다.

1971년에 추진된 경주고도 개발계획에 의해 한국 고고학에선 유례없는 대규모 발굴사업이 시작됐고 당시 박정희 대통령의 지시로 황남대총 발굴이 결정됐지만 발굴을 해야 할관계자들은 엄두를 내지 못했다. 1970년 당시 우리나라에서는 큰 고분을 발굴한 경험이없었다. 이전까지의 발굴은 일제시대엔 일본인들에 의해 이루어졌고 해방이후엔 외국 고고학자들에게 의존했기에 당시 우리에겐 축적된 경험, 기술, 전문인력이 없었던 것이다.결국 관계자들은 황남대총을 발굴하기 전 발굴경험과 기술을 익히기 위해 황남대총 앞자그마한 고분을 시험발굴하게 된다. 그러나 당시 155호라 불리던 작은 고분 발굴은 예상밖에 대단한 것이었다. 자그마치 1만2천여 점의 유물이 쏟아져 나온 것이다.
 
가장 크고 두꺼운 금관도 발굴됐지만 사람들을 사로잡은 것은 천마가 그려진 장니(말다래)였고 천마도가 출토된 이 무덤은 이후 천마총이라 불리게 된다.장니는 진흙이나 이물질이 튀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달아놓은 마구인데 신라의 회화작품이 많이 출토되지 않은 까닭에 발굴 당시 천마도는 귀한 대접을 받았다. 그런데 천마도장니를 보존처리한 결과, 장니는 2장의 자작나무 껍질을 합판처럼 결을 엇갈리게 겹쳐 꿰매 만든 것으로 밝혀졌다. 한랭지역의 북방에서 구한 것으로 추정된 1500여 년 세월을 견뎌낸 이 자작나무껍질은 다시 한 번 사람들을 놀라게 했다.

이처럼 자작나무 껍질은 천년이 지나도 썩지 않아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불경이 자작나무 껍질로 만들어졌고, 자작나무는 고려시대 팔만대장경을 만드는 재료로도 사용됐다 또한 기름기 있는 밀랍성분 때문인지 불에 잘 타는 성질이 있어 옛날 사람들은 부싯돌로 불을 지필 때 사용하기도 했고 자작나무의 껍질을 태워 어둠을 밝히고 행복을 기원했던 관습도 있었다고 한다.

한편 잘 썩지 않는 흰 수피에 적어 보낸 사랑의 편지는 사랑을 이루어 준다고 믿어져자작나무가 사랑의 나무로 여겨지기도 했다. 참 쓸모가 많은 나무다.중앙공원 한 모퉁이엔 자작나무가 근사하게 군락을 이루며 서 있다. 칼칼한 겨울바람속에 의연하게 무리지어 선 자작나무를 바라보며 사람들도 제 각기 다양한 재주와 능력들이 있는데 각자가 가진 능력과 재주들이 올 한 해 자작나무처럼 요긴하게 잘 쓰이길 바라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