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에 마흔 다섯 번째 생일을 보냈습니다. “여보! 나한테 뭐 할 말 없어?” “뭐가?” “아니… 뭐 그냥….” “엄따!” 경상도 출신의 무뚝뚝한 남편은 역시 내 생일에 대해 말이 없더군요. 이번에도 잊었나 보다 했지만, 직접 말하기가 쑥스러워 그냥 넘어갔습니다. 그래도 하루 종일 섭섭한 마음은 가시지 않았습니다. 내내 전화기만 쳐다보고 있는 나를 발견했죠. 하지만 기다리던 휴대폰이 울릴 때마다 백화점과 치과에서 보내온 건조한 메시지뿐이더군요. ‘나이가 이렇게 됐는데 아이처럼 생일은 무슨….’ 그렇게 스스로를 다독이면서도 참 쓸쓸한 하루였습니다. 그러다가 다 늦은 저녁 시간에 택배 하나가 도착했습니다. 기대 반, 호기심 반으로 포장을 뜯어 보니 그 안에는 은행통장이 2개 들어 있었습니다. 하나하나 펴보았죠. 통장마다 제목이 있더군요. 첫 번째 통장의 제목은 ‘우리 장모님과 일본 온천 여행가기’. 평소에 안부전화 한 번 제대로 안 드린다고 그렇게 바가지를 긁었는데…. 남편은 혼자되신 엄마를 위해 조용히 작년부터 적금을 들고 있었나 봅니다. 두 번째 통장의 제목은 ‘아내 감동시키기’. 결혼 프로포즈도 없었고, 이벤트라는 것도 모르던 남편이 나를 위해 만든 16여 년만의 생일선물이었습니다. 매달 적은 용돈을 떼어 1년여 간 2개의 통장을 만들었을 남편! 용돈을 줄 때마다 아껴 쓰라고, 왜 이리 돈을 헤프게 쓰냐고 타박을 했던 내가 정말 미안해지더군요. 적금을 넣고 난 후 그 적은 용돈으로 어떻게 한 달을 꾸려갔을지, 하루종일 서운해 하고 원망했던 내가 너무나 부끄러워졌습니다. 부자의 통장처럼 큰 액수의 돈이 담긴건 아니지만 저에겐 ‘가족의 사랑’이 매달 적립된 크고 소중한 선물이었습니다. 그날 나는, 남편 덕분에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부자가 되었습니다. 저작권자 ⓒ 비전성남,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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