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란지교(金蘭之交)’ 예전에 선물 받은 명함집에 새겨진 글귀가 오늘에서야 눈에 띈다. 새로운 일을 찾겠다고 그만 둔 전 직장의 명함을 정리하다, 문득 외로움과 허전함이 몰려온다.
혼자서 수개월 나름의 재택근무를 하다보면 가끔 몸서리치게 사람이 그리워질 때가 있다. 그런 날은 탄천으로 산책을 나간다. 군중 속의 고독조차 사치라고 느껴질 때면 스쳐 지나가는 행인들이 동행인처럼 살갑다. 탄천은 무성한 녹음과 함께 어우러져 이미 여름이 한창이다. 쏟아지는 햇볕에도 간간히 부는 바람에 시원한 녹색의 향내가 풍겨져 오니, 마음의 곰팡이들마저 소독되는 듯하다. ‘오늘 딱 세 사람에게만 인사를 건네보자.’ 탄천에 나갈 때마다 마음먹곤 하지만 태생적 소심함에 애초 생각부터 무리한 발상이었다며 포기하곤 했다. 하지만 오늘은 무언가 ‘중요한’ 일을 하지 않으면 안 될 것 같은 그런 날이다. 유난히 햇살이 따사롭지 않은가. “운동 열심히 하시네요. 날씨가 참 좋죠?” 아웃도어를 입은 아주머니는 약간 당황해 하며 빠른 보폭으로 지나가 버린다. 그래, 일단 인사하기는 성공이다. “아기가 참 예쁘네요. 매일 같이 산책하시나 봐요.” “아… 네….” 젊은 아기엄마는 유모차의 차양막을 손으로 한 번 쓸어내리며 수줍게 웃는다. 모녀의 미소가 이상하리만큼 내 마음까지 평온하게 만든다. 자, 이제 한 번 남았다. “할아버지, 오늘 날씨가 산책하기에 참 좋은 것 같아요.” “으이? 그려, 날씨도 좋고 기분도 좋네. 허허허~” 하루에도 SNS에서 수십 번씩 소식을 주고받지만 오늘은 정말로 사람 향내가 진하게 나는 소통을 한 것 같다. 오늘의 인사 과제(?)는 해냈다. 내일은 더 많은 사람들과 조금씩 더 소통해 나가리라. 금란지교. ‘두 사람이 마음을 하나로 하면 그 날카로움이 쇠를 끊고, 마음을 하나로 하여 말하면 그 향기가 난초와 같다.’ 분당의 혈맥처럼 이어진 이 탄천 길에서 나는 조금씩 변하리라. 어쩌면 이길이 나를 변화시키는 좋은 ‘길’이 될 것 같은 희망을 품는다. 저작권자 ⓒ 비전성남,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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